무빅기자들의 영화이야기/안영윤 기자

커버스토리 <바보> 차태현 & 하지원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3. 28. 15:07
<바보> 차태현 & 하지원
바보의 해맑은 웃음처럼

강풀의 만화를 바탕으로 한 <바보>가 2월 말 개봉한다. 개봉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차태현과 하지원은 출산 예정일
이 훨씬 지난 <바보>를 품은 채 오랜 시간 제법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보 승룡이의 해맑은 웃음을
경험한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한 표정으로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개봉일이 확정된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차태현 <바보>는 내가 결혼하기 전에 촬영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야 개봉하게 됐다.(웃음) 개봉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느끼기는 정말 처음이다. 개봉일이 확정된 후에는 휴대폰에 디데이를 설정해 놓고 기다릴
정도다. 우리 아기 태어나길 기다린 이후 손꼽아 뭔가를 기다리기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개봉이 계속
미뤄지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 <바보>가 개봉해야 마음 편하게 출연할 수 있으니 기다리다 출연하지
않은 작품도 있다. 초반에는 <바보>는 겨울에 개봉해야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개봉일이 자꾸
늦어지니 나중에는 아무 때나 개봉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뭘 잘못해서 개봉하지 못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많이 답답했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있어서 내가 노력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
었다. 어쨌든 잘 마무리돼서 정말 다행이다.
하지원 <바보>는 촬영한 지 오래된 영화인데도 오래 지났다는 느낌이 안 든다. 촬영하며 너무 좋았고, 개봉
일이 확정돼서 더 좋다.
두 사람은 촬영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나?
차태현 사실 지원이를 잘 몰랐다. 오다가다 시사회에서 보고 미용실에서 보고. 근데 지원이랑 꼭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어서 내가 부탁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
하지원 근데 왠지 낯설지 않았다.(웃음) 신기하게 오빠와는 사진 촬영할 때도 오빠가 어깨동무를 하고 팔짱
을 끼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더 자연스럽고 그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웃음)
차태현 나도 상대 여배우보다 센 역할을 하면 다 잘 안 되더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역이 재벌 2세, 이런
거잖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웃음) 근데 지원이랑 같이 출연하고 싶어하는 배우들이 참 많다.
지원이가 착해서 그런 것 같다. 물론 첫째는 연기를 잘해서겠지만 둘째는 성격이다. 성격 안 좋은 건 다 소
문나니까.
하지원 처음 오빠가 같이 하자고 전화했을 때, 왜 나한테 했을까 싶었다. 사실 나는 드라마와 영화를 선택할
때 좀 다르다. 연기하는 건 같지만, 드라마는 친숙하고 시청자들에게 잘 융화되는 캐릭터를 하는 게 재미
있다. 그때그때 반응이 바로 오니까. 하지만 영화는 좀 강렬하고 특이하고 남들이 잘 안 하는 캐릭터를 하는
걸 좋아한다. 오빠 전화를 받고 원작 만화를 읽었을 때만 해도 내가 <바보> 승룡이의 첫사랑인 지호 캐릭터
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내가 지호 캐릭터에 잘 어울려서 같이 하자고 했다기보다 그냥 전화를 해본
것 같았다.(웃음) 영화에서 지호 캐릭터가 강렬하진 않지만 책을 읽으니 감성이 너무 좋았다. 정말 <바보>에
출연하면서는 계산된 연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냥 바보를 만나 그 바보에 따라 내가 움직인 것 같다.
처음 함께한 영화인데 촬영하면서는 어땠나?
차태현 진짜 재미있었다. 세트, 소품, 배경 등에 공을 많이 들이는 영화여서 기다리는 시간이 참 많았다.
대기실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반 가정집 방을 하나 빌려 다 같이 이불 하나씩 덮고 아줌마들처럼 수다
떨고 그랬다. 근데 한참 얘기하다 보면 주위에 나 혼자 남자더라.
하지원 오빠가 진짜 너무 웃겼다. 더 좋았던 건 연기하면서 차태현의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니라 바보 승룡이가
만화에서 막 걸어 나온 것처럼 보인다는 거였다. 바보 승룡이가 오랜만에 첫사랑을 만난 느낌이 이성 간의 사랑
이나 동정 같은 느낌은 아닌 듯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내가 촬영하며 느낀 건 승룡이는
동네에 한 명쯤 있을 법한 바보지만, 그 바보가 바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거였다. 누군가 꼽추는 등 뒤에
날개가 있는 것이라더라. 또 바보는 천사가 아니면 천재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 말을 촬영하며 실감했다.
시나리오를 보면 승룡이와 지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꽤 있던데,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아역배우들을 보면 신기하지 않나?

차태현 어디서 저렇게 나랑 비슷한 아이를 골랐을까 신기했다. 입술 두꺼운, 하하하.
하지원 연기를 너무 잘하니 기특했다. 한편으로는 아역 배우들에게 지지 않으려면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차태현의 아이가 배우를 하겠다면?
차태현 절대 안 된다. 이쪽 일을 해본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대학 갈 때까지는 평범하게 성장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데 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바보>의 명장면을 꼽는다면?
차태현 나는 두 장면이 있다. 생각지도 않은 장면에서 확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승룡이가 토스트 가게에서
일하다 “엄마, 난 안 울어요” 할 때. 그리고 지호가 승룡이를 씻겨주는 장면. 영화를 보니 진짜 뭉클하더라. 내가
출연했지만 영화 보며 여러 번 울었다.(웃음)
하지원 난 승룡이가 동생 지인이 때문에 정신없이 달려가는 장면. 처음엔 많이 웃었다. 오빠 목소리도 워낙 크고
행동도 좀 황당해서. 하지만 영화 보니 정말 짠하더라. 그리고 지인이에게 준다고 부엌에서 혼자 꼼지락꼼지락
토스트 만들 때, 또 바보 오빠가 싫은 지인이가 자기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니 문밖에서 살짝 문 열고 서 있는
장면. 그때는 내가 가서 승룡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일상적이고 소소한 행동들이 가슴을
찡하게 하는 영화다.
흔치 않은 친근한 매력의 소유자 차태현
요즘 차태현의 최대 관심사는?
아기와 잠. 지난 12월 26일 아들이 태어났다. 밤마다 울어서 잠을 잘
못 자지만, 그래도 예쁘다.(웃음) 하지만 애야 잘 크고 있으니 지금
최고 관심사는 개봉을 앞둔 <바보>다.
바보 연기는 처음 도전하는데 어떻게 연기했나?
배우들이 바보 연기를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는
칼럼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인위적으로 내가 뭘 만들기보다 만화책의 승룡이가 스크린에 바로
옮겨간 느낌이 들었으면 싶었다. 정말 아이처럼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승룡이는 실제 모델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좀 애매하긴
했다. 제작사에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촬영한 비디오를 주었는데
그 중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말도 또박또박 하고, <배트맨>을
시리즈별로 정확하게 기억할 만큼 똑똑하더라. 그 친구에게 연기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다운증후군인
사촌동생이 있어서 공감하는 지점이 참 많았다.
체중을 8킬로그램이나 불렸다던데?
그 친구들은 배고프면 먹고 본능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뚱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하루만 운동을 안 하면 금방 찌는 체질이다.
살찌우는 건 너무 쉬웠다. 밤에 라면 먹고 바로 자고, 참 편하더라.
전날 술 먹고 부은 얼굴로 다음날 촬영장에 가면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셨다. 근데 살 빼는 건 진짜 힘들었다. 난 먹을 것 다 먹으면서 집에서 러닝머신 뛰었는데 예전 같지 않아서
4킬로그램은 죽어도 안 빠지더라. 결혼식할 때까지 다 안 빠져서 그냥 결혼했다.
차태현의 매력은 친근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인데, 이미지를 바꿔 액션이나 스릴러 장르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내가 생각해도 난 시대를 좀 잘 탄 것 같다. 특출한 미남이거나 조각 같은 얼굴은 아니니까. 강한 스릴러나 액션
장르도 생각하긴 했지만 사람마다 다 맞는 분야가 있는 것 같다. 굳이 내 욕심 때문에 내가 할 수 없고, 어울리지
않는 역을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도전을 즐기는 늘 푸른 마음의 배우 하지원


최근 <색즉시공 시즌 2>나 <마지막 선물... 귀휴> 등에서 얼굴을 볼 수 있긴 했지만 주연을 맡은 영화
는 없었다. 어떻게 지냈나?

1년 정도 잘 쉬었다. <색즉시공 시즌 2>는 처음부터 카메오로 출연하겠다고 했다. <색즉시공> 때의 캐릭터 자체가
너무 예뻤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 변질된 내가 그 캐릭터로 출연하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선물... 귀휴>도 조연으로 의리 출연했다. 딱 1년 쉬었으니 올해에는 다시 일하고 싶다.
최근 윤제균 감독의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에 생선 파는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던데?
하하하. 나도 기사를 통해 봤다. 아직 시나리오가 없는데, 잘 모르겠지만 괜찮을 것 같다. 생선 파는 여자가 잘
어울릴 것 같다. 많은 감독님들과 작업을 해왔지만 두 번씩 작업한 감독님은 딱 세 분이다. 안병기 윤제균 김정권
감독님. 난 그런 인연이 너무 좋다. 내게 직접 말씀은 안 하셨지만 <해운대>에 하지원이 출연한다고 감독님이
하셨으면 그런 것 같다.
김정권 감독과는 <동감> 이후 6년 만에 다시 만나 작업했는데 어땠나?
감독님이 정말 변함이 없으시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 같지 않았다. 감독님도 나도 나이를 먹고 있지만, 정말 똑같다.
이제 서른 살인데 새삼 나이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 않나?
근데 작품을 하다 보면 계산 방법이 좀 달라진다. 한 살 두 살 나이 먹고 해가 바뀐다는 것보다는 <바보>를
2006년에 촬영했고, <황진이>를 촬영하고, <1번가의 기적>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찍었고… 이런 식으로 계산이
된다. 그래서인지 나도 나이 들었다는 생각이 잘 안 든다. 물론 자신에게 투자하고 신경 쓰고 관리를 하긴 한다.
<바보>에서 하지원의 가장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다던데?
그게 다 태현 오빠가 퍼뜨리는 소문이다. 막상 영화 보고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벌써부터 걱정이
다. <바보>는 참 착한 영화다. 영화의 초반에 승룡이를 처음 만났을 때 지호가 도망가는 장면이 있다. 학창시절
정말 승룡이 같은 친구가 학교 주변에 늘 있었다. 무서워서 도망 다녔는데, 안 보이니까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이사 간 건지 궁금하더라. <바보>를 촬영하며 옛날 생각도 많이 했다. 만화책에서 느껴지던 감성이 영화를
보면서도 관객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라하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유학생 역인데, 피아노는 원래 좀 치는 편이었나?
어릴 적 배우긴 했지만 하나도 생각이 안 나더라. 노영심 언니한테 피아노 레슨을 한 3개월 정도 받았다. 근데
생각보다 피아노를 직접 치는 장면은 별로 없다. 딱 두 곡을 쳤는데, 승룡이가 좋아하는 ‘작은 별’과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 연주하는 모차르트 곡이었다. 그래도 손만 나오는 장면에서도 대역을 쓰지 않았다. 건반을 누르는
손 모양도 물 흐르는 듯 해야 해서 집중적인 연습이 필요했다.
요즘 하지원의 최고 관심사는?
지금 성악을 배우고 있다. 내 몸을 악기로 만드는 작업이 처음 하는 것이라서 신기하고 어렵고 흥미진진하다.
성악을 하며 큰맘 먹고 그랜드 피아노도 하나 장만했다. 호흡만 두 달 배우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으로
정말 기본부터 하고 있는 상태다. 근데 너무 힘들다. 에너지 소비가 커서 한 시간 하면 땀나고 배고프다.
처음엔 하고 나서 쓰러져서 잤을 정도다. 외국에서 <오페라의 유령>이나 <물랑루즈> <라이온 킹> 같은
공연을 봤는데 잘 알아듣지 못해도 어느 순간 눈물이 날 것 같고 내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감동적이었다. 그냥 배우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꿈은 크게 가지라고, 잘되면 나중에 뮤지컬에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안영윤 기자 2008.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