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빅기자들의 영화이야기/정수진 기자

박경리 선생님과 이명박 대통령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5. 14. 03:03

박경리 작가를 떠나보내며
한국 문학의 한 장을 넘기다
한국 문학을 세계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 박경리 작가가 5월 5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뇌졸중으로 끝내 숨을 거뒀다. 박경리라는 이름에는 단순한 [소설가]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대하소설 <토지>가 존재한다. 토지에서 나서, 토지에서 자라고, 다시 토지로 돌아간 그 분과 그 분이 남긴 작품들이 어떻게 변형돼 왔는지 되돌아봤다.

4월 말, 기자는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뒤적거리다 [소설가 박경리, 뇌졸중으로 의식불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클릭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설마] 했다. 설마, <토지>를 쓰신 분인데, 생명력 넘치는 작품들을 써오신 분인데 분명 이겨내실 거라 여겼다. 그러나 5월 5일, 전국의 어린이들이 기쁨에 들떠 있는 날에 박경리 선생이 별세하셨다는 기사를 접하고야 말았다. 향년 82세. 옛말로 하자면 이른바 [호상]이랄 수도 있는 연세지만 그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때문일까. 문학계는 물론 정계, 재계, 문화예술계 할 것 없이 조문을 오는 이들로 빈소가 북적북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전직 대통령들까지 조문을 오고, 화환을 보내왔을 정도다. 언론에서는 [한국문학계의 거목이 지다] [문단의 별, 토지로 떠나다] 등 앞 다투어 추모 기사를 전했다. 박경리 선생에게 문화예술인들에게 주는 최고 권위의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다. 고인이 과연 그런 추앙과 훈장을 원했을지도 의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애도의 분위기는 일주일이면 그런 일이 있었느냐 싶게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떠나간 이에 대해서는 금방 잊어버리니까. 하지만 고인이 남긴 작품마저 그리 쉽게 잊혀질까?

한국 문학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한 <토지>
1926년 10월 28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전매청 서기였던 김행도 씨와 결혼하지만 한국전쟁 중 남편과 아들을 잃고, 홀로 외동딸을 키우게 된다. 이후 친구의 도움으로 소설가 김동리를 찾아가 그의 추천을 통해 단편소설 <계산>(1955)을 <현대문학>에 게재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고인이 해방 전까진 한글을 몰랐다는 것. 한글을 익힌 지 10년 만에 문단에 데뷔했다는 이 사실은 [문단의 전설]로 내려오고 있단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고인은 <불신시대> <벽지> 등을 발표하고, 1962년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 <시장과 전장> <파시> 등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1969년. 대하소설 <토지>의 집필을 시작한다. <토지>는 소설가 박경리의 대표작이며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박경리는 19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면서 1부를 시작했지만 이내 유방암 선고를 받고 암과 사투를 벌였다. 이후 <문학사상> <주부생활> <정경문화> <월간 경향> 등 여러 매체에 걸쳐 연재되던 <토지>는 1994년 8월, <문화일보>를 통해 25년 만에 전 5부로 완성됐다.
<토지>는 전 21권(나남출판사 기준)으로, 200자 원고지로만 4만 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1897년 구한말에서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경남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최서희를 중심으로 동학농민전쟁, 갑오개혁, 을미사변 등 한국 근대사를 폭넓게 훑는다. 등장인물만 700여 명이 넘는 대작인 데다 다루는 사건들도 여러 가지라 주인공 외엔 소홀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토지>가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영화로 치면) 엑스트라에 불과한 인물마저도 그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는 잊혀져 가는, 혹은 아예 사람들에게 잊힌 우리말을 더없이 생생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유시민 전 국회의원이 {소설 <토지>를 다섯 번 정도 읽으면 글쓰기를 잘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토지>는 우리말을 풍부하고 적절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지>에 쓰인 <우리말사전>이 따로 편찬됐을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오렌지를 [어륀지]로 발음하도록 공부해야 한다는 요즘 같은 시대, 고인의 작품이 더욱 귀하게 다가오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토지>는 한 작가가 25년에 걸쳐 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총체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특히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지금 소설가 박경리를 추모하고 있다면, 고인의 작품 <토지>를 읽어보길 권한다. 그것이 포털사이트에서 박경리를 검색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고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이니까.
정수진 기자


 고 박경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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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327호에 실린 박경리 선생님 추모 기사입니다.
어린이날 밤에 소식을 들어 허겁지겁 글을 썼죠.
박스로 영화와 드라마화된 작품들을 소개했지만 우선 그건 패스.

사실 박경리 선생님 부고 소식 들리고 빈소를 찾은 으리으리한 조문객들 중
가장 심히 마음에 걸리고 생뚱맞아 보인 것이 우리의 MB,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바로 이번에도 맞춤법 실수를 저지른 것이죠.

이전에도 MB의 맞춤법은 화제가 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는 [~습니다]를 [읍니다]로 표기하는 경향이 있죠.

물론 저도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진 [~읍니다]로 배웠기에 나이 든 사람이라면(물론 대통령은 그러면
안된다고 보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충원 방명록에 쓴 [~모든 것을 받치겠습니다]를 보고
좀 경악했지만 참모의 실수도 크다고 생각했고요. 한 번 이런 일이 있었으니 다시는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박경리 선생님 빈소에 조문와서 쓴 글은 더 가관이더군요. ㅡㅡ;;;

[이 나라 강산을 사랑 하시는 문학의 큰별께서 고히 잠드소서.]

딴 건 고사하고라도 고이를 고히... 고이를 고히... 말 그대로 문학의 큰 별이 누워계시는 빈소에서
이런 맞춤법을 구사하시니, 그저, 할 말이 없을 따름입니다.

자연을 사랑하시고, 잊혀져 가는 우리말을 물 흐르듯 구사하셨던 박경리 선생님과
대운하를 주장하고, 부끄럼 없이 틀린 맞춤법을 구사하는 MB가 너무나도 대비돼 보이던 지난 주였습니다.


제발, 맞춤법 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