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와 전혀 상관없는 영화 캐릭터 스타일링
모든 영화 속 인물들이 <섹스 & 시티> 언니들처럼 쇼핑을 즐기는 건 아니다. 트렌드를 쫓느냐, 거부하느냐도 캐릭터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자신만의 룰 안에서 패션을 소화해버린 4명을 찾았다. 남다른 패션 덕분에 인상도 강렬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안톤 쉬거
고집스런 단발머리>> 때는 1980년대. 컬러풀한 디스코의 황홀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텍사스 촌구석이 영화의 배경이다. 조용필 오빠도 울고 갈 안톤 쉬거의 단정한 단발머리는 70년대 비틀스가 유행시킨 [몹(mop)] 스타일. 영국에선 [대걸레(mop) 머리], 한국에선 [더벅머리]라 불렸던 그 스타일이다. 하비에르 바르뎀의 머리는 보안관으로 함께 출연했던 토미 리 존스가 텍사스-멕시코 국경지대 유흥가에서 발견한 1979년 흑백사진 속 인물을 토대로 스타일링한 것. 1980년대에 1970년대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그는 자기만의 트렌드 안에서 사는 캐릭터로 다가온다. 나름 멋을 부렸으나 결국 시대에 뒤떨어진 [나홀로 트렌드세터] 캐릭터는 언제나 웃기기 마련이다.
실용적인 데님 한벌>> 작업복에 가까운 청재킷과 청바지는 안톤 쉬거가 [질긴] 것을 좋아한다는 걸 드러낸다. 데님은 작업(?)이 며칠이 걸리든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머리카락 한 올 삐져나오지 않고, 재킷의 소매를 정확하게 접혀 있다. 그는 상대방에 외모에서 어떤 흐트러짐도 느낄 수 없도록 완벽한 매무새를 유지한다. 외모의 흐트러짐과 마음의 흐트러짐이 일치하는 사나이.
스타일링 팁>> 거친 느낌의 블루블랙 데님 한 벌은 몸을 옥죄듯 딱 맞아야 한다. 단발머리는 거울보고 우스워질 때까지 싹둑싹둑 자르는 게 포인트. 끝을 헤어드라이어로 가볍게 말아준 뒤 헤어스프레이로 고정한다. 머리가 흐트러질 정도의 액션은 절대 하지 않는다.
<데어 윌 비 블러드> 대니얼 플레인뷰
블랙, 그레이, 브라운>> 대니얼 플레인뷰가 열심히 살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의 기본 색감은 블랙, 그레이, 브라운, 베이지였다. 로맨틱 무드가 지배했던 세기말, 패션은 빠르게 변해갔으나 플레인뷰의 주서식지는 다행히도 뉴욕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망망한 사막이었다. 석유를 사랑하는 그는 작업 중에는 색이 진한 허름한 셔츠에 발목까지 올라오는 가죽구두를 신는다.. 외부인들과 사업을 할 때는 19세기말 빅토리아 왕조풍의 우아한 정장을 고수한다.
모자>> 모자는 당시 남자들의 필수 아이템. 개인의 직업과 계급을 드러내는 표현수단이기도 했다. 플레인뷰의 브라운 계열 중절모는 늘 깨끗하게 손질이 되어 있다. 그에게 모자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런 맥락이라면, 교회에서 모자를 벗어야 한다는 설정은 꽤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스타일링 팁>> 헌옷 수거함에서 사이즈만 대충 맞춰 어둔 색으로 대충 골라 입으면 플레인뷰의 작업복 완성. 앞서가는 사업가 모드일 때는 재킷, 조끼, 셔츠를 갖춰 입는다. 넥타이보다 시계가 더 중요하다. [무심한 듯 바쁜] 인상을 주기 위해 옷에 약간 주름이 져 있어야 한다.
<달려라! 타마코> 타마코
집착의 레이어드>> 존재 자체가 세상과 [미스매치]인 타마코는 다양한 소재를 레이어드해서 입는다. 4차원 소녀답게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게 핵심. 스모키 아이와 블랙 의상을 제거한 [하라주쿠 소녀] 버전이랄까. 세상으로부터 마치 자신을 보호하는 듯한 타마코의 레이어드 패션은 상상을 초월한다. 패티코트식의 원피스, 그 위에 니트 스웨터, 그 위에 니트 숄, 그 위에 니트 머플러 등 풍성하게 레이어드하고, 색도 원색과 파스텔톤을 오간다. 일본 스트리트 패션을 귀엽고 예쁘게 스타일링.
경계의 헬멧>> 경계심 강한 타마코는 외출을 할 때면 철공소를 하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헬멧을 쓴다. 뇌를 보호하는 헬멧은,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고집의 표현으로 보인다. 또한 타마코의 헬멧은 [여자/남자]의 성별를 초월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남자들이 애용하는 헬멧이 여자아이와 만나 편견을 깨는 촉매로 작용한다.
언제나 장화>> 밖에 나가 돌아다닐 때 소나기라도 몰려올까봐 꼭 장화를 신는다. 헬멧에 장화로 세상과 맞설 수 있는 전투복 완성. 장화는 못 생긴 종아리를 가려준다는 장점도 있다.
스타일링 팁>> 몸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캔디 컬러 원피스 및 니트류 의상 겹겹이 입기. 심한 레이어드이기 때문에 뚱뚱해보일 위험이 있다. 마른 자만이 완벽하게 소화 가능한 패션.
<바보> 승룡이
점퍼>> 직접 산 것도 아닌, 누군가 오래전 물려준 느낌의 빛바랜 점퍼. 색감과 디자인 때문에 초등학생이 입었던 점퍼를 떠올리게 만든다.
부스스 꼬락서니>> 머리를 며칠 동안 안감은 듯, 과도하게 자연친화적인 승룡이 머리. 전혀 멋있지 않은 만화의 머리를 그대로 재현했다. 씻지 않아 더러운 얼굴, 마구 늘어난 [추리닝], 촌스러운 스웨터 등 일상적인 비호감 요소들이 총집합되어 있다.
스타일링 팁>> 오래 입어 늘어나고 지저분한 의상이 필수. 잘 벗겨지는 신발도 필요하다. [깔끔한] 무언가는 절대 걸치지 않는다. 홈리스와 구분하기 위해서 개인적 색감 취향이 녹아있는 의상을 골라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