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자는 일할 때 거의 영화 이야기만 합니다. 만날 영화판 관계자들만 만나 영화 애기를 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다른 분야에 있는 친구들과 할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이죠.
그런데 영화기자의 효용가치가 발휘되는 순간은, 영화밖 사람들 혹은 친구들을 만날 때입니다. 아주 근본적이고도, 날카로운 질문이 꼭 튀어나옵니다. "요즘에 볼 만한 영화 있냐?" 그런데 문제는 직업의 특성상 영화를 미리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극장에 도대체 뭔 영화가 걸려 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아, 그 영화 봐라." 했는데 개봉하려면 한참 남은 경우. 나와 상대방 사이에 온난화에도 녹지 않는 빙하가 존재하는 기분이 되어버립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인터뷰 하러 잘 가는 카페가 있는데, 늘 조용히 커피만 주시고 가던 매니저님이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5월에 재미있는 영화 있나요?"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찾는다고 하셨죠. 그런데 머릿속에서 빙빙 도는 영화는 <비스티 보이즈>였으니. 이것 참. 엄마, 아빠와 나란히 앉아 호스트빠 청년들의 나이트 라이프를 감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결국 마음에 드는 대답을 못 해드렸어요. 영화 기자에 대한 신뢰도가 팍팍 떨어지지 않았을까요?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도 대화는 비슷합니다. "뭔 영화가 재미있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도 질문은 같아요. "뭔 영화가 재미있냐?" 영화기자란 직업을 알리고 소개팅을 나가도 질문은 그렇겠죠. "뭔 영화가 재미있나요?"
사실 백번 인터뷰를 하는 것보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영화기자의 가장 큰 효용가치는 '재미있는 영화를 찾아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가 뭐 대단한 사람들인가요. 그냥 사람들이 두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아이템을 잘 알려주면 되는 것이죠. 음, 무비위크의 매력도 그런 것일까요?
- 이번주에 이 질문을 받는다면? "요즘 무슨 영화가 재미있나요?" 취향에 딱 맞는 영화는 아니지만 <버킷 리스트> 정도를 권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굉장히 마니악한 영화를 좋아하지만, 대답은 또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영화로 해야 하는 것이죠. ㅋ
무빅기자들의 영화이야기/홍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