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에서 드니 라방에게 전주 영화제에 대한 소감을 묻자, 전주의 그 많은 음식 얘기는 쏙 빼놓고(사실 당연하죠, 뭘 알았겠습니까-_-) 벨라 타르의 회고전에 대한 언급을 했었죠. 영화의 거리에서 만난 영화 감독들도 마찬가지였고, 이번 전주영화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벨라 타르를 이야기 했습니다. 살아있는 벨라 타르가 전주 거리를 활보해서 실감이 덜하지만, 아무튼 생전에 회고전이 마련되는 거장 감독인 겁니다. 그의 작품세계의 유니크한 예술적 가치는 롱테이크에 취약해 어쩔 때는 기어이 3분 안에 잠들어버리는(한 5분 자고 일어나도 화면에 변화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저에게도 와닿는 바입니다.
인터뷰 때는 그가 왜 거장인지, 포스로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았는데요. 그에게는 어떤 질문을 해도 명확한 자기 '입장'이 답변으로 되돌아옵니다.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는 대답하기 싫은 이유를 또한 명확하게 덧붙입니다. 그리고, 영화로 이야기되어야 할 자신에 대해 말로 하는 것이 싫은 티를 과감하게 팍팍 냅니다-_ -.. 말하면서 자신이 웃고 싶은 대목에서는 웃고, 인상 쓰고 싶을 때에는 인상 쓰면서, 상대방도 자신의 말에 공감하고 있는지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몇몇 질문을 던졌고, 대답했지만, 기자를 일정 컨디션 하에서의 대화 상대가 아닌, 철저한 메신저로만 취급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기자의 수용방식이나 감정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몇 년 간 인터뷰를 했지만, 감정 없는 문답이 오가는 인터뷰는 흔치 않았습니다. 여느 배우들과는 다른 의미의 벽이 존재했습니다. 이제까지, 벨라 타르는 거장으로서의 자아를 그런 식으로 일궈왔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뷰가 아침이었는데, 그 전날 공식석상에서 운영상의 미숙으로 심기가 불편했다고 하긴 하더군요. 인터뷰는 제 입장에서 다소 걸끄러웠으나, 결과적으로는 기사쓸 거리야 풍부했습니다. 문제는 사진이었죠. A컷이 나오긴 했는데, 다른 인터뷰가 200컷을 찍고 1컷을 고른다면, 벨라 타르는 20컷도 채 못 찍은 시점에서 촬영을 그만하자고 해서 그 중 A컷을 간신히 건진 거였습니다. 왜 "촬영은 이만 됐어, 그만 해"했을까요? 사진 찍히는 게 싫은 걸까요? 아니면 이미 A컷이 포토그래퍼의 카메라에 찍혔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요? '거장'의 포스때문에 후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촬영 중에 반동강을 내는 건 자신의 높은 위치를 지나치게 자각하고 못된 권한으로 써먹는, 자신의 예술을 인정해주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부족한 태도였습니다. 이미 A컷이 나왔을 거라 생각했더라도, 그 판단은 포토그래퍼에게 맡기는 게 예술하는 사람으로서의 겸손한 예의였을 겁니다. 포토그래퍼 또한 자신의 세계를 가진 예술가 아닐까요. 물론 무비위크의 포토그래퍼는 파인아트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벨라 타르만큼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고 있는 건 아니지만요.
벨라 타르라는 벽에 막혀 촬영을 스스로 끝내지 못하고 끝냄 당한 우리 포토그래퍼 김태선씨에게 미안함을, 더불어 전주영화제 기간 내내 좋은 사진을 고심한 노고에 감사를 전합니다.
무빅기자들의 영화이야기/이해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