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6월 17일 화요일.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평범한 마감일이었습니다.
저는 여느 마감일과 마찬가지로 편안한 마감 복장에, 내추럴 자체인 '생얼'로 원고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점심 시간이 다가오자 수상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옆자리 편집 선배 정수진 기자가 선크림을 바르고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곧 송지환 편집장님과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은빈이도 데려갈까요?"
"응, 뭐…."
그리하여 졸지에 따라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지금 누구 만나러 가는 거예요?"
"오동진 선배."
순간 뜨악했습니다.
<무비위크> 뷰파인더 코너에 매주 원고를 보내주시는 칼럼니스트이자 그 유명한 영화전문기자 오동진 선배를 이렇게 뜬금없이 뵈러 간다니.
다 좋았는데 마감일에 걸맞는 제 모습이 순간 좀 창피하게 느껴진 게 사실입니다. ^ ^;;
도착한 곳은 인사동.
사무실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에 오동진 선배가 일하시는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오동진 선배보다 먼저 우리를 반겨 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오동통한 고양이입니다.
(참고로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 손은 정수진 기자의 손입니다.)
이거 보고 "꺄아~" 하실 분들 좀 있으실 것 같습니다.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뒷모습이 너무 사랑스럽죠?
사무실을 두리번 거리는 무비위크 정지원 기자의 모습입니다. 하핫
탁자 위 물통에 빼꼼히 보이는 게 제 얼굴입니다.
편집장님께서 찍어주셨는데 좀 재밌게 나온 것 같아서 은근히 마음에 드네요.ㅋ
참고로 저는 원래부터 얼짱 각도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입니다. ㅡ.ㅡ;;
드디어 나타나신 오동진 선배.
사실 매주 <무비위크> 편집을 하면서 칼럼에 실리는 캐리커처로만 외모를 인식해온 저로서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캐리커처에서의 딱딱한 정장 이미지보다 훨씬 젊고 감각적인 느낌이었달까. 여하튼 실물이 훨씬 나으셨거든요.
오동진 선배가 데려간 곳은 근처의 굴요리 전문점이었습니다.
자, 지금부터 이곳에서 배터지게 먹었던 화려한 요리 컬렉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여름철이라 생굴은 안 좋다고 굴전을 권해 주셨습니다.
굴은 참,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먹어도, 구워 먹어도, 이렇게 전으로 부쳐먹어도 제맛이 납니다.
(뜬금없이 팀버튼의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이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
홍어 삼합.
아쉽게도 저는 아직까지 삼합의 묘미에는 빠져들지 못했습니다.
굴전과 삼합을 다 먹고, 식사를 시킬까 요리를 더 시킬까 잠시 논의한 끝에 시킨 오마니 왕순대.
'아바이 왕순대'는 예전에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는데, '오마니 왕순대'는 무슨 맛일까.
가게 벽에 크게 부착돼 있는 포스터를 보니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그러나 접시를 다 비울 때까지 '아바이 왕순대'와의 뚜렷한 차이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 ^;;
요리를 주문할 때마다 나왔던 탕.
굴과 각종 해산물을 우려낸 시원한 맑은 국물에 미역이 적절히 어우러져 강한 중독성이 있는 맛이었습니다.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오동진 선배가 해주시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방송사,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를 모두 거친 화려한 경력의 스타 기자이신만큼 각 매체의 특성과 실제 기자 생활에 대해 영양가 있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여러 모로 풍요로워진 것 같아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뒤이어 새벽까지 쏟아지는 원고를 평소보다 좀 더 기분 좋게, 명민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씩, 이런 유쾌한 일탈이 채워주는 희열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