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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빅기자들의 영화이야기/안영윤 기자

371호 무비위크 커버 스토리 황정민+류덕환 비하인드 컷


 <그림자살인> 황정민+류덕환

 The Day They became Private Eyes


황정민이 견고하게 잘 빚어진 질그릇 같다면 류덕환은 섬세하게 다져진 유리 그릇 같은 느낌이다. <그림자살인>은 전혀 다른 외양과 분위기와 삶의 시간을 지닌 그들이 만나 처음으로 호흡을 함께한 영화다. 수더분한 사설탐정 진호와 순수한 의학도 광수가 된 황정민과 류덕환은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1900년대 경성거리를 숨 가쁘게 내달린다. 백여 년 전, 외인들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탐정’이라 불렀더란다.
글 안영윤 기자 | 사진 오중석 

Our Happy Time_ 그들의 가장 행복한 시간


"난 인터뷰 끝날 때! 하하, 농담이고 집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31개월 된 아기랑 놀고 집사람과 도란도란 얘기하는 시간. 사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예의 아닌 예의를 갖춰야 할 때가 많잖아요. 집사람과는 그런 것 없이 아무 얘기나 할 수 있으니. 전 우리 애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한 1년 전쯤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어요. 학원도 없는 시골 분교 근처. 어릴 적 난 시골에서 자랐는데 그땐 잘 몰랐어도 자연과 함께 지낸 느낌이 아직도 느껴져요. 말로 표현하긴 힘든데, 얼굴을 스쳐가던 봄바람 느낌이라든지, 담벼락 밑에서 쪼였던 햇빛 느낌이라든지. 자연과 함께한 경험이 내 인생에서 굉장히 큰 에너지로 남아있는 듯해요. 우리 아이도 그런 경험을 느끼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_황정민 


"그냥 전 요즘 아침에 지하철 타고 학교 가는 게 좋아요. 신문도 보고 노래도 듣고 전화 오면 받고, 학교 가서 밤새워 한 과제물 내고 후배들한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전 제 나이 때 할 수 있는 걸 너무 못해봐서 이런 게 가장 행복한 게 아닐까 싶어요." _류덕환
 



“(황정민) 선배님과 작품을 함께하며 배우고 싶은 게 하나 생겼어요. 잘 들어주고 잘 말하는 포옹력이라고 해야 하나. 선배님은 상대방이 절대로 기분 나쁘지 않게 말씀하세요. 잘 이해하도록 말하고 다시 생각해 보도록 말하시죠. 상대방 이야기도 잘 받아들이고. 항상 얘기하며 좋았던 게 ‘넌 어떻게 생각하니?’ 물어보시는 거였어요. 난 내가 맞다 생각하면 계속 고집하는 편이었는데, 그런 포용력을 배우고 싶었어요.” _류덕환

 

황정민_ 사내다운 터프함과 부드러운 포용력의 공존
황정민은 시원스럽다. 속사포처럼 막힘없는 사내다운 터프함을 그는 스스로 “성격이 급하기 때문”이라 표현한다.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빡빡한 홍보 일정에 감기 기운이 겹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황정민은 테이블에 앉아마자 먼저 질문을 던진다. 단 한 번도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흥행예감이 제대로 적중한 적 없다는 그에게 <그림자살인>은 빨리 열어보고 싶은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다.   <그림자살인>의 빡빡한 홍보 스케줄 속에서도 단지 “좋아하는 감독”이라는 이유로 시나리오도 안 본 채 <오감도> 시리즈 중 민규동 감독의 단편 영화에 출연하고 있고, 김아중과 함께 4월 말 시작하는 TV 드라마 <식스먼스>에서도 모습을 드러낼 계획이다. 황정민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그는 곧 이준인 감독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촬영할 계획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년간 무대를 통해 연기력을 다져온 배우답게 “무대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그는 여름에는 일본에서 연극 <웃음의 대학>을 공연하고, 올 연말쯤에는 뮤지컬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마흔 살쯤에는 <저수지의 개들>같은 갱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배트맨> 같은 영화에서도 연기할 수 있다면 좋겠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존재만으로도 삶이 느껴지는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해요." 빈틈없는 나날이지만, 황정민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부지런히 성장하는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는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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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환이는 젊은 친구인데도 그릇이 되게 커요. 양반 같아요. 배우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덕환이처럼 양반 같아야 해요. 내가 그렇지 못해 좋아하는 걸 수도 있겠죠. 연기는 나를 보이는 게 아닌 또 다른 인물을 보이는 것이니 대단히 조심스러워야 해요. 허투루 하는 건 관객을 배반하는 짓이죠. 군대 다녀오고, 서른 넘으면 덕환이가 어떤 영화를 할까 궁금해요. 그런 내일이 기대되는 배우죠.” _황정민


류덕환_ 냉철한 열정과 유쾌한 시선의 공존 
<우리동네>가 마지막이었다. 류덕환은 어린 왕자 같은 여릿한 몸을 지닌 잔혹한 연쇄 살인마였다. 태연하게 날카로운 살인도구를 휘두르던 그가 2년여 만에 볼수록 유쾌한 의학도가 되어 돌아왔다. 길에서 시체를 주워 밤새워 해부하며 공부할 정도로 냉철한 열정을 가진 광수가 류덕환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쩐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진짜 살인범 대신 살인자로 누명을 쓸 위기 상황에 처한 것. 결국 그는 사설탐정 진호에게 진범을 찾아달라고 사건을 의뢰한다. 늘 새로운 캐릭터를 열망하는 류덕환은 광수를 시나리오에서보다 밝은 캐릭터로 해석하고 싶었다. 

류덕환이 실제로 배우가 되겠다고 굳게 마음을 품은 것은 장진 감독을 만나고부터였다. <전원일기> <오남매> 같은 걸출한 TV 드라마에서 아역 연기를 도맡으며 성장했지만, 류덕환은 딱히 배우로 살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또래 아역 배우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어요. 연기를 잘하겠다는 생각보다 다른 애들을 이겨서 감독님께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죠. 그때까지 전 열등감 때문에 연기를 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묻지마 패밀리>에 출연하면서 이런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도 있구나.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며 산다면 좋겠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연기를 다시 시작한 류덕환은 <웰컴 투 동막골>의 순진한 병사와 <천하장사 마돈나>의 여자가 되고 싶은 통통한 소년 오동구를 거치고, 아들이 되어 무기수 아버지를 만나고, 잔인한 연쇄 살인마로 모습을 바꾸며 소년에서 점점 어른이 되어갔다. 결코 다작하진 않지만 작품마다 완벽하게 몰입하고 탈바꿈하는 류덕환은 <그림자살인>을 촬영하며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연기를 참 잘했다는 소리도 좋지만, 재밌게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를 찍었다는 말을 들어보고 싶어요.” 아직 하고 싶은 연기가 너무 많은 류덕환은 대학 캠퍼스를 성실히 뛰어다니며 배우로서의 미래를 탄탄하게 다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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