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4일에 진행한 <스프링 어웨이크닝> 인터뷰 전문입니다. 지면 관계상 생략된 내용이 많아서 최대한 현장 분위기를 살려서 전합니다. 작품에 대한 고민으로 진지하게 얘기하다가도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릴 때는 매우 유쾌한 분위기가 되었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대가 되는 작품인지라서 그런지 저도 평소보다 급 흥분해서(기자가 평정심을 지켜야하는 데 말이죠 으하하-_-) 셋이서 작품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열의를 불태우기도 했던 인터뷰였네요. 두 시간 가까이 치열하게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굉장히 좋은 작품이 될 거란 기대감이랄까요? 책에 다 못 넣은 사진도 함께 전하니 마음껏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생에 단 한 번뿐인 순간
공연이 한 달 정도 남은 것 같다. 연습은 잘 하고 있나?
정석 잘 진행되고 있나?(웃음)
무열 스케줄에 맞춰서. 아주, 열심히!(웃음)
오디션 자체가 아주 까다롭게, 그리고 오래 진행됐다.
무열 우선 공개 오디션을 봤고, 그 다음 합격자가 워크숍에 참석했다. 나는 그 때 촬영이 걸려 있어서 일주일 전체 참여는 못하고 마지막에 겨우 참석을 했다. 개인적으로 연습하고 음악 감독님께서 다행히 시간을 빼 주셔서 연습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그나마 일주일동안 같이 했으니까 즉흥연기 해도 조금 괜찮은데, 나는 정말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안녕하세요, 저는 김무열입니다.” 이렇게 인사하고 바로 때리고.(웃음) 날 것 연기.(웃음) 지금까지의 오디션이랑은 많이 달랐다.
오디션 당시 배역을 정해서 본 건 아니었나?
정석 배역이 정해진 건 없었다. 그건 관계자 분들이 판단한 거고.
그래도 희망하는 역할을 있었을 거 아닌가?
정석 그렇다고 할 수 있다.(웃음) 나는 모리츠였다, 처음부터.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님께서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좋은 작품이니까 꼭 오디션을 보란 얘기를 들었었다. 근데 주위에서 다들 그 얘기를 하는 거다. 그래서 알아 봤더니 토니상을 8개를 휩쓸고, 단순히 상을 많이 타서가 아니라 작품 정보를 찾아보니 정말 좋은 작품이구나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음악 CD를 줬는데 음악이 너무 좋은 거다. Don`t sadness가 너무 좋은 거다. 그 때까지만 해도 캐릭터에 대한 파악이 안 된 상황이었다. 모리츠란 인물이 자살하고, 임팩트가 조금 센 앤가? 어떤 앤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우선 얘는 주인공이 아니래. 근데 주인공이 아니든 뭐든 자세히 알아보니까 모리츠가 자꾸 눈에 밟히는 거다. 지인 중에 한 명은 나한테 멜키오가 어울린다고, 자꾸 그러긴 했지만.(웃음) 난 모리트에 완전 꽂혔다. 일단 보기 드문 캐릭터고, 진부하지 않은 소재를 가진 캐릭터라고 생각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자살을 하는지 더 깊이 알고 싶고 궁금했다.
무열 나도 사실은 모리츠하고 싶었다. 임팩트가 있으니까. 자살을 하고 혼자 고민하고 방황하고, 그렇게 어딘 가에 빠져 있다는 건 허우적거린다는 거니까, 해보고 싶었다. 근데 이 양반이 모리츠한다고 하니까.(웃음)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인물일까 고민이 많았다. 노래는 당연히 끌렸고. 대본도 너무 좋고. 음악과 대본이 잘 어울러지겠다 싶었고. 근데 멜키어는 재미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주인공 같은 주인공이라고. 작품에 대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 우연찮게 공연실황 풀 버전을 본 거다. 어, 뭐야? 하고 받았는데 그건 거다. 정말 맨 마지막에 Those You`ve Known 부를 때, 그 장면! 그 장면에서 정말 멜키어에 빠져버렸다. 모리츠의 무덤 앞에서 슬퍼하던 그가 벤들라가 죽은 걸 그 때서야 안다. 모리츠가 죽음으로 임팩트를 준다면 멜키어는 남겨진 자의 슬픔, 아픔. 그 장면을 보고 정말…,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슬픔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지금 너무 힘들다.(웃음)
정석 때때로 그런 거 있지 않나.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웃음) 유독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연습하면서 계속 그러는 것 같다.
무열 욕심쟁이!(웃음) 형이 노래하면 내가 따라 부르고 있고, 내가 부르면 형이 막 따라 부르고 있고. 그게 막 느껴진다. 서로 막 부러운 거다.
정석 같은 역이면 경쟁 했을텐데, 워낙에 두 캐릭터가 너무 좋다보니까 서로 배역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
백년 전, 독일, 청교도 학교의 열여섯 학생들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
무열 처음엔 일단 난해했다. 낯선 인상이 시작하니까 계속 낯설게 보게 되더라. 물론 사춘기 시절의 열정, 뜨거운 억눌림 이런 건 느껴지는데 우선 낯설게 시작하다보니 우리 것이 아닌 외국 애들의 낯섦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기도 하고. 거기다가 크리에이티브 팀이 와서 참여를 하니까 걱정을 많이 했다. 겁도 많이 났고. 그런데 연습을 하면서 느낀 건 사람이 참, 사람이 사람 사는 게 똑같구나라는 거다. 관객들에게 독일인을 연기하는 한국사람 그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맞닿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외국 스텝들도 디렉션을 줄 때 외국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정서를 강요하지도 않고 우리의 정서를 이해하고 있는 게 많더라. 그걸 느껴서 연기를 한다면 그거 자체만으로 한국적인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석 (갑자기 막 웃으며)아, 내가 왜 웃었냐면…, 정말 똑같은 생각을 해서. 가끔 가다보면 얘가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다.(웃음) 난해하고 이런 걸 떠나서 도대체 나는 이 작품, 어떤 작품이든 외국 작품을 가져와서 대사를 조금씩 수정해나가고 하지만 이건 완전 ‘생짜’인 거다. 대본도 그렇고 모두가. 외국의 정서인 거다. <미스사이공><올슉업> 이런 걸 생각해봤는데, 잘 보지 않나. 우리 작품도 그러겠지? 나도 무열이처럼 고민이 많았었는데 고민이 많아지면 산으로 가니까, 생각을 굳혔다. 사춘기를 거쳤다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통된 정서가 있다.
무열 어차피 100년 전이기 때문에, 배경이 우리나라라고 해도 어색한 이질감이 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그걸 표현을 하면 관객들은 분명 알아줄 거다.
아무래도 자연스레 그 당시를 많이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정석 어제 이 닦으면서 문득 생각한 게 그 때 우리 감정이 어땠나? 하는 걸 고민한다. 무열이랑 연습하다가 “우리는 너무 더러워.” 그런 얘기를 한다.(웃음) 깨끗하지 못해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지금 열여섯 열다섯 애들을 만나서 얘기를 좀 해볼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
무열 맞아맞아, 근데 수 적으로 걔네들이 많아야 돼. 걔네들끼리 놀게 만들어서 우리가 지켜보는 거지.(웃음) <즐거운 인생> 때도 고등학생들 나오는 영화보고, 애들 얘기할 때 기웃거리고그랬는데, 이상한 형이 와서 자꾸 쳐다보니까 애들이 막 도망가더라.(전원 폭소)
그 때 당시 어떤 학생이었나.
무열 처음이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춘기가 인생의 단 한 번 뿐인 소중한 기간이 아닌가. 생각이나 몸의 변화가 중요하다. 아까 정석이 형이 말한 것처럼 지금의 내가 더럽다는 생각도 들고.(웃음) 자꾸만 처음이란 걸 잊는 것 같다. 여자와 남자가 어떻게 아이를 가지는 지 너무 궁금했는데 누구도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초등학교 수업 시간 때 그것도 5학년이 되서야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아기가 생긴다는데, 어떻게 만나는지는 안 가르쳐주는 거다. 그래서 물어봤다. 원래 질문 안 하는 학생이었는데 질문을 했더니 선생님께서 머뭇거리시면서 얼버무리시는 거다. 중학교 때 야동을 처음 봤는데, 자장면 먹다 말고 토할 뻔 했다. 그만큼 우리들은 몸의 변화에 대해서, 성(性)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었던 거다. 그래도 다행인 게 요즘은 전보다 성교육을 철저하게 잘 한다고 하더라.
정석 우리나라는 너무 감추고 부끄러워한다.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그 시절의 아이들을 억압하고 충동적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하면서 너무 좋은 게 예전 기억을 계속 떠올린다는 거다. 아주 사소한 기억들까지 말이다. 첫 기억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전혀 생각을 안 해도 될 것까지. 전부. 혼자 있을 때 계속 생각을 하니까. 난 중1 때 장난 아니었다. 완전 개망나니.(웃음) 근데 2학년 때 친구를 잘 만났다. 엘리트 애들 4명을 만났는데 걔네랑 같이 지내다보니까 공부의 맛을 들인 거다. 이런 기분 무열인 모를 거다.(웃음) 미친 듯이 공부만 한 거다. 중2 때 반에서 4등, 전교 22등까지 했다. 최고의 성적.
무열 그게 최고면 뭐야. 자랑할 정도는 아니잖아!(웃음)
정석 왜 이래, 내가 쭉 그 등수 유지했어. 그래서 인문계 고등학교도 갈 수 있었고. 정말 공부했던 기억밖에 없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거 아나 모르겠네?(웃음)
음악을 했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럼 음악은 언제부터 한 건가?
정석 아, 그건 고등학교 가서.
그럼 고등학교 가서도 그 성적을 유지했나?
정석 어휴, 성적은 무슨. 고등학교 때는 또 춤에 빠져서 춤추러 다니고.(웃음) 그 때 당시 애들이 터보의 트위스트 킹 H.O.T 영턱스클럽 이런 거 출 때 우리는 안무를 직접 만들어서 했다. 급이 달랐던 거지. ‘아이스아이스베베’라고. 센세이션 했다. 영등포 공고, 서울 공고 춤 좀 춘다는 애들이 다 보러 오고.
무열 아이스아이스베베로 점령하셨군요.(웃음)
정석 수업 끝나면 책상 밀고 춤 연습하고. 그래도 나머지는 공부했던 기억 밖에 없다.(웃음)
그럼 모리츠랑 잘 맞는 부분이 있네?
정석 모리츠는 잘 하고 싶어도 못하는 앤데, 나는 잘 하고 싶은데 잘 했다.(웃음)
무열 나는 수학을 진짜 못했다. 어렸을 때 수학 학원에서 4시 반부터 7시까지 수학만 공부했던 기억이 아직도.(웃음) 자체적으로 시험을 보는 데 하나 틀릴 때마다 한 문제당 한 대씩 때렸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맞으면서 공부를 해서 나는 당연히 공부를 잘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중학교 들어가서 시험을 봤는데, 취해서 봤는데 68점을 받은 거다. 3년을 공부했는데! 손이 막 떨리고.(웃음)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 했냐면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거다. 오차가 있었겠다.’ 이렇게.(웃음) 그래서 다시 공부를 했는데 54점이야 또.(웃음) 그래도 영어 국어 사회 이런 건 잘 했다. 수능 때 결국 수리영역 7점 받았다.
정석 야, 그건 너무 포기했다.
무열 진짜 수능을 보러 갔는데 1번부터 모르겠는 거 알지? 보통 4번까진 알잖아?(웃음)
정석 집합은 알았어야지!(전원 폭소)
무열 줄 세우긴 좀 그렇고, 나만의 공식으로 풀었다.(웃음) 근데 좋아하는 과목은 잘 했다. 아, 근데 되게 웃긴 게 수능을 전교에서 7등을 했다. 310 몇 점이 나온 거다.
수학이 7점인데?
무열 언어랑 영어는 거의 만점이었다. 수학 수리영역 1, 2는 영…, 내가 원래 숫자에 약하다. 그러고 보면 정말 이 사회는 모든 걸 잘 하라고 강요하는 게 너무 문제다. 옛날 생각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 하게 된다. 그 당시엔 그 감정이 더 격하지 않았을까. 모리츠와 멜키어처럼.
캐릭터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더라. 마음이 싱숭생숭하더라. 지금의 감정 상태는 어떤가.
정석 늘 이뤄질 것 같고 다음엔 좋을 것 같단 그런 걸 보다보면 재미가 없지 않나. 선배님들 보면 ‘어떻게 저럴까?’ 그럴 때 더 재미를 느끼고 흥미를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모리츠를 연기할 때 정말 새로운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한다. 많은 것들에 대해서. 앞으로 파헤칠 게 너무 많다. 계획을 세운 것도 좀 있고, 모리츠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모리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욕심 상으로는 아직 너무 너무 많이 부족하다. 할 게 너무 너무 많다. 하루 종일 생각만 하다가도 모자란다. 모리츠만 생각하려고 하고 있다.
모리츠가 죽음을 선택하기까지의 마음은 어땠을지 고민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석 고민도 중요한데, 모리츠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가를 말해주는 거. 열등감의 정도가 나한테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내가 죽음으로 가는 거를 차근차근 밟아갈 수 있으니까. 그 열등감이라는 건 가장 친한 친구인 멜키오에게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느끼는 거다. 나르시즘에 빠져 있는 사람도 많지 만 모리츠는 그렇지 못하니까. 사회 안에서 그가 판단하는 위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그런 것에 대한 정서가 생기면 그 열등감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고. 그런 상황이 겹쳐지면서 그의 행동이 확고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반면 멜키어는 남겨진 사람이다.
무열 연기라는 게 어쨌든…, 접신 한다고도 하고 그러지 않나. 연기를 할 때 확신이 들지 못하면 아예 시도도 하기 힘들다. 자연스레 움직이질 못한다고 해야 하나.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당시에는 이럴 것 같아서 움직이는 거고. 이미 나와 있는 멜키어에 대한 해석을 기본으로 두되, 그 자체를 틀로 생각하진 않는다. 신 하나하나를 연습하면서 순간순간의 느낌을 수집하려고 하는 중이다. 아버지한테 혼나고 내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리츠를 챙겨주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아프다. 눈물이 날 정도로. 모리츠를 보고만 있는 것만으로도. 멜키어는 철저히 이성적으로 스스로를 감싸고 있는 아이다. 아는 것만 많고 경험은 없다. 또래 친구들은 그를 우월하게 생각하지만 그 또한 결국엔 애 인거다. 소년과 남자, 그 사이의 경계에 애매하게 서 있는 거지. 계속해서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멜키어를 연기하기 위해서 과거의 감정을 끄집어내는 건 분명 필요하고, 감정이 확확 분출되는 걸 느낀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솔직히 말해서 힘들다. 하지만 다 안고 가야하는 거다.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고 있다.
멜키어는 완벽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멜키어는 그런 주변의 시선조차 안고 가야하는 사람이다. 알고 보면 연약한 아이이지 않을까?
무열 철저히 이성으로 감싸고 있는 아이인데. 경험은 없고 아는 것만 많은, 결국 애 인 거다. 어떻게 보면 똑똑한 청년 같은 이미지인데(웃음) 남자와 소년의 사이의 애매한 경계에 서 있는, 그런 친구. 그래서 내가 더 더럽게 느껴지는 건가?(웃음)
기묘한 계절로의 이행
배우들의 고민이 많은 만큼 연습실의 밀도가 엄청나더라.
정석 엄청나지. 배우들은 물론이고, 스텝들까지 ‘이 작품을 잘 만들고 말겠어.’란 각오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웃음)
무열 배우로서 이런 작품, 이런 분위기를 만난다는 건 정말 반가운 일이다. 스스로 뜨거워지는 걸 느낀다.
정말 이렇게 만드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공연 시작 전부터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부담스럽진 않나?
정석 부담스럽긴, 뮤지컬계의 슈퍼스타 무열이가 있는데.(웃음)
무열 무슨 소리냐, 다들 ‘우리 정석님이 나오는 공연’이라고 들떠있던데.(웃음)
정석 그런 외부의 분위기나 관심은 둘째 치고 무열이랑 같이 작품을 한다는 거 자체가 좋다. 둘이서 시너지 효과가 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고. 관심 가져주는 팬들도 너무 중요하지만 지금은 작품 말곤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공연 보고 다들 작품에 대한 좋은 평을 해준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부담 이전에 설렌다. 무열이가 있으니까. 나는 인터뷰 할 때마다 얘기한다. 김무열 같은 배우가 될 거라고.(웃음) 이거 꼭 써 줘야 한다.
무열 이건 정말 확실하게 조정석이 김무열을 놀리는 거라고 써달라.(웃음) 장난이 아니라 정말 나도 형이랑 작품해서 너무 좋다. 내가 후배 입장에서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조정석은 너무 좋은 배우고 앞으로 더 좋아질 배우다. 캐스팅 발표 됐을 때 가장 기대되는 게 정석이 형이었다. 요즘 맨 날 둘이서 술 마시면서 얘기를 많이 하는데, 너무 좋다.
아무래도 멜키어와 벤들라의 성애 장면 때문인지, 노출 수위에 대한 관심이 높다. 자칫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무열 노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쪽으로 포커스가 되는 게 안타깝다. 그 장면은 우리 작품에서 굉장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흔들리는 무대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그 장면이, 노래와 어우러질 때의 마음이 저려오는 그 느낌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멜키어와 벤들라 모두 첫 경험이다. 이게 뭔지도 잘 모르고, 미숙한 두 사람이다. 이성적으로 사회에 억눌려 있는 두 사람이 자신의 감정에, 욕구에 솔직해지는 순간인 거다. 그 솔직하고 순수한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길 바라고 있다.
정석 우리나라는 성(性)에 있어 너무 움츠러들어 있다. 내가 이 작품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괜히 숨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무열 무조건 놀라지 마세요. 그런 게 아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놀랄 수도 있는 거다. 놀라지 말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거고. 그런데 그 장면이 작품 안에서 절대로 튀거나 어색한 장면이 아니니까. 순간 놀랄 수는 있어도 그 감정 자체가 자연스럽게 돌아올 수 있겠단 생각을 한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땐 21세기에 부활한 <렌트>가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렌트>가 정말 뜨겁게 내지르는 작품이라면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보면 볼수록 차갑게 느껴지더라.
무열 맞다. 그게 어렵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굉장히 치밀하게 형식화, 양식화되어 있다. 게다가 대사 자체가 문어체다. <렌트>는 사회에 대한 반항, 예술가로서의 열망을 뜨겁게 분출을 하지 않나. 그런데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안에선 뜨겁지만 그게 밖으로 분출되지 못하는 상태다. Totally Fucked나 The Bitch Of Living 정도나 되어야 한 번 내지르는데 그 또한 현실에서 잠시 도피한 상태에서의 간접적인 분출이다. 그래서 배우가 정확한 뉘앙스를 가지고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극이 낯설어질 수 있다. 쉼 없이 스스로를 경계하게 된다.
스스로 경계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전에 연극을 선택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무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올린 작업이라 부족한 게 많았다. 괴로워하고 고민한 시간이 너무 많았다. 담배를 끊었다가 하루에 두 갑을 피울 정도였으니까, 하루에 두세 시간 밖에 못 자겠더라. 지금도 만족스럽거나 그 때의 고민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생각하면 이 모든 게 그저 감사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이번 연극 작업의 묘미였던 것 같다.
정석 언제나 욕심이 끝이 없다. 누구나 그럴 거다. 연기에 대해서 더 많은 걸 지향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그렇다. 주변에선 왜 연극을 하냐며 모두 말렸다. 그런데 하고 싶었다. <아일랜드>란 작품을 너무 좋아하고, 스스로를 깨는 작업이 필요했다. 결과를 떠나서 나에게 너무나 필요하고 좋았던 작업이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마지막 곡 The Song Of Purple Summer의 ‘자줏빛 여름’이란 대사가 굉장히 와 닿더라.
무열 아, 정말인가? 이걸 물어봐주는 기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자줏빛 여름’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궁금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미묘한 기운을 느꼈다. 이 작품이 희망을 종용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출발점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 지점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두 배우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석 지금 너무 놀라서 소름이 끼쳤다. 그걸 물어볼 줄 몰랐다. ‘자줏빛 여름’을 받아들이는 데는 각자 다른 경험과 감정이 있을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미친 듯이 방황했었다. 아버지 짐을 정리하는 데 나를 위해서 돈을 모아두셨더라, 마음이 아파오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싶었다. 어두운 가운데서 희망의 빛이 보이더라. 그 느낌이다. 나에게 자줏빛 여름은. 가을, 겨울은 뭔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쓸쓸하지 않나. 자줏빛 여름을 떠올릴 때마다 멜키어를 생각한다. 친구인 모리츠도 사랑했던 벤들라도 모두 죽고, 남겨진 멜키어가 노래를 할 때. 난 정말 그 빛을 본다. 잿빛이 아니고 왜 자줏빛일까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오는 데 마냥 밝지만은 않은, 어둠이 섞여 있는 그 느낌인 거다. 멜키어를 통해 자줏빛 여름을 보게 될 거다. 그 순간의 감정이야 말로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말하고자 하는 걸 모두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무열 나는 아직 만개하지 않은 꽃봉오리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꽃이 막 만개하기 직전의 온도와 습도, 그 미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꽃 속에서 빛을 느낀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미친 놈 같아서 말 못했는데.(웃음) 정말 그렇다. 빛을 바라보는 거다. 아직 활짝 피지 못한 꽃봉오리 안에서.
정석 곧, 자줏빛 여름이 올 거다. 그리고 그 여름에서 우리가 다 만나게 될 거다.
글/무비위크 이유진 기자
사진/테오스튜디오 김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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