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세상을 만나다
뮤지컬 <컴퍼니>
결혼과 인생에 대한 감각적인 보고서
“과연 우리의 인생에서 결혼은 꼭 필요한 것일까? 둘이여서 즐거운 일상과 혼자여서 자유로운 일상, 우리는 이 모든 게 결국 수많은 인생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 이 세상에 결혼이란 제도가 생겨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실의 우리들에게 결혼이 갖는 의미는 분명 이전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듯하다. 실체가 없는 추상 명사의 의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화하거나 퇴화하기 마련, 보일 듯 말 듯 그 존재의 명확한 의미를 정의내리기 힘든 ‘결혼’ 또한 그 운명을 피해갈 순 없는 일이다. 시작부터 명쾌한 정의내림 없이 시작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 만든 삶의 한 방식 결혼.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이 삶의 방식은 이제 의무에서 선택으로 점차 그 권위를 박탈당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고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간 시간 속에서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중요한 건 인류 역사상 ‘결혼’이란 단어는 가장 오묘하고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그 자체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뮤지컬 <컴퍼니>는 바로 이 ‘결혼’에 대한 아주 세련되고 감각적인, 그리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한 섬세하고 명쾌한 보고서다. 잘 생기고 능력 넘치는 골드 미스터 바비가 그의 결혼한 친구들과 세 명의 애인 사이에서 결혼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 퍼즐처럼 펼쳐지는 무대. 뉴욕에서의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면서 동시에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기도 하고 때로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하는 바비, 그는 누군가 곁에 없다는 외로움에 결혼을 꿈꾸다가도 싱글의 달콤한 자유를 놓치기 싫어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개성 만점 각양각색의 다섯 커플 또한 그에게 결혼을 권유하지만 동시에 결혼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대리 만족을 느낀다. ‘결국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게 결혼인가’ 하고 결혼에 대한 해답을 찾을까 싶으면 또 다시 그 본질을 고민하게 만드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의 나열은 이 뮤지컬의 특기이자 관람 포인트다. 이름만으로 전설이 되는 뮤지컬계의 전설 스티븐 손드하임은 감히 정의내리기 힘든 결혼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그 안에서 얽혀드는 인간관계에 대한 모든 것을 그 에피소드 속에 녹여놓는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 간의 접점은 결혼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해결할 열쇠로 작용한다.
늘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 같아도 사이좋은 해리와 사라, 이혼 후에 더 잘 지내는 쿨한 피터와 수잔, 서로를 위해 일탈도 마지않는 데이빗과 제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결혼식을 치룬 폴과 에이미, 까칠한 조앤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는 래리까지 사실 바비의 솔직한 마음은 이 다섯 커플들과 조금씩 결혼하는 것. 혼자는 외롭고 둘은 지루하고 셋이 완벽하다는 바비의 마음 씀씀이는 결국 그가 얼마나 외롭고 또한 겁이 많은 사람인지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런 바비의 모습은 딱딱한 도시 안에 바쁜 일상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제목인 ‘company’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 작품 안에선 보통 ‘친구 혹은 함께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결혼을 선택하느냐 마느냐를 갈등하는 바비와 그와 함께 삶을 즐기고 싶은 그의 친구들이 어우러지는 과정은 ‘결혼’의 필요성을 논하기 이전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중요성을 논한다. 즉, 이 작품은 결혼에 대한 감각적인 보고서이기 이전에 인생에 대한 아주 치밀하면서도 생생한 지금 우리의 현실 그대로인 것이다. 열네 명의 등장인물 모두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인생이 스스로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지를 암시한다.
끊이지 않는 에피소드 속에서 결혼과 사랑,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바비가 과연 얼마나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우리의 인생에서 결혼은 꼭 필요한 것일까? 결코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으면서 할 말 다 하는 똑똑한 무대. 주 · 조연 할 것 없이 결혼과 인생에 대한 통찰을 열연한 열네 명의 배우들은 완벽한 호흡으로 멋진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배우가 하나의 무대이자 소리가 되는 연출과 모던한 무대, 시크한 의상, 그리고 바비의 심리에 따라 뒤바뀌는 세련된 조명은 <컴퍼니>의 스타일리시함을 증명한다. 결혼과 인생에 대한 감각적인 보고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객석의 박수와 웃음은 단순히 재미의 표현을 넘어선 ‘공감’의 세리머니다. 수많은 인생의 단면이 노련하게 어우러진 무대에서 지금 나의 위치를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이 매력적인 무대는 내 안에 담긴 결혼에 대한 환상과 현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 틀림없다. 덧붙여 지금 내 주변을 둘러싼 인간들과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실체도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