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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빅기자들의 영화이야기/정수진 기자

우려낸 사골국이 진하다? <태양의 여자>의 재미

<온에어>가 끝나고, <이산>이 끝나자 드라마 판도는 그야말로 절대 강자가 없는 형국입니다.
<일지매>가 조금 앞서고 있고, 막 시작한 <식객>이 좋은 성적을 냈지만 더 두고봐야 알겠죠.
젊은층의 눈을 사로잡으며 강세를 보였던 월화, 수목드라마가 약세를 보이는 반면
주말드라마가 승승장구하는 중입니다.

어지간한 드라마는 거의 보고 싶은 [테순이]인 기자는 시간만 나면 드라마를 봅니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도 있고, 손에 땀을 쥐고 보는 명품 드라마도 있지만요.
최근에는 수목드라마 <태양의 여자>를 주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원래 수목드라마로는 MBC <스포트라이트>를 열혈 시청 중이었는데, 이것이 점점 재미를
잃게 만들더군요(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양의 여자>는 그야말로 방영 전에는 누구도 '대박'을 기대하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다소 90년대틱한 김지수 한재석 콤비에, 출생과 어두운 사연에 얽힌 두 자매의 이야기라니.
이하나 정겨운 등 젊은 스타들이 참여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흥행 보증수표는 아닌 터라.
그래서 처음 방영할 때도 '시작하나보군' 하고 지나쳤습니다. 그러다 주말에 케이블 채널에서
연속 방영해 주는 것을 보고 이 드라마의 재미를 맛보고야 말았습니다.
물론 시청률은 <일지매>에 훨 못 미치고, <스포트라이트>와 엎치락뒤치락 중입니다만,
흔히 말하는 '뻔히 내용 전개 보이지만 당긴다' 류의 재미를 선사한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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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내용은 매우 익숙합니다.
모든 게 완벽한 상류층 부부가 있습니다. 남자는 백화점 상임고문, 여자는 미대 조소과 교수입니다.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이 부부에게 아이가 안 생깁니다. 그래서 보육원에서 도영(김지수)을 입양합니다.
그런데, 도영을 입양하고 나니 친딸 지영(이하나)를 낳게 되더라 말입니다.
불안감에 휩싸인 도영은 급기야 동생 지영을 서울역에 버리고 오게 됩니다.
이후 지영은 목포 보육원에서 윤사월이란 이름으로 성장하게 되고, 도영은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여성 1위로
꼽히는 인기 아나운서가 되어 김준세(한재석)라는 약혼자까지 갖게 됩니다.
그러던 중 우연에 우연이 겹쳐 도영과 사월, 즉 도영과 지영이 만나게 됩니다. 곧 도영은 사월이 자신이 버린
동생 지영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러나 자신의 죄를 밝힐 수 없는 괴로움, 자신의 행복을 놓칠까 하는 두려움
등으로 동생을 외면하고 맙니다. 동생 지영, 즉 사월은 자신이 성장한 보육원의 후원자의 아들이었던
김준세를 줄곧 사랑해 왔습니다. 아직 준세가 도영의 남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지만 모든 사실을 다 알게
되고 난 후엔 아마도 준세에 대한 사랑+언니 도영에 대한 복수심 등으로 준세를 차지하고자 할 겁니다.
그리고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차동우(정겨운)은 항상 사월만을 바라봐 왔지만, 입양아로 어두운 그늘을 갖고
있는 도영에게도 연민을 갖게 됩니다.

자, 이쯤 되면 여러 드라마가 겹쳐지지 않습니까?
우선, 강하게 이 드라마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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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에 엇갈려 입양되는 바람에 원래와 다른 세계에서 성장하는 자매(?)가 겨룬다는
드라마 <패션 70s>와 매우 흡사합니다.
김지수에 김민정을, 한재석에 주진모를, 이하나에 이요원을, 정겨운에 천정명을 대입시켜 보면
딱 들어맞습니다.

또, 이 드라마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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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였던 김민정이 소유진이 양아버지의 친딸임을 알자 이를 은폐한 뒤, 골프로서의 성공과 한 남자를 두고
겨루는 이야기였죠(그러고보니 김민정은 <패션 70s>에서도 비슷한 역을 맡은 거였군요).
역시 김지수에 김민정을, 이하나에 소유진을, 한재석에 김주혁을, 정겨운에 김재원을 대입시키면
크게 다르지 않은 조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입양아와 친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왕꽃선녀님> <소문난 칠공주> 등도 생각나는군요.
아무튼 <태양의 여자>는 우리가 그동안 못 봤던, 전혀 새로운 이야기의 재미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즐겨봐왔던 드라마들을 우리고 또 우려낸 진한 맛을 보여준달까요.
물론 거기엔 주인공을 맡은 김지수의 안정적인 연기가 한몫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남자배우들은 매우 미미한 역할밖에 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특히 정겨운은 <패션 70s>의 천정명을 롤모델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보입니다. 이제 아무 개성없는
무조건적인 지고지순 남자는 매력이 없거든요.)

<태양의 여자>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한국 드라마를 몇 년 봐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숨기려 하겠지만 도영의 악행은 밝혀지겠지요.
사월은 자신이 지영임을 알고 도영에 대한 미움이 생겨날 거고요.
그러나 시청자들은 주인공 도영을 마냥 악역으로 바라볼 수 없기에 더욱 애절하게 드라마를 지켜보게 되겠죠.
드라마의 결말은 <패션 70s> 혹은 <라이벌> 중 한 가지를 택할 수밖에 없어보입니다.
대단원의 화해를 보여주긴 했으나 권선징악 형식으로 마무리한 <패션 70s> 또는
결국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마무리시킨 <라이벌>의 해피엔딩 형식.
아마도 좀 더 애절함을 추가시켜 전자를 택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 <태양의 여자>의 진정한 재미는 김지수-이하나의 대결보다(아직 대립적 구도가 성립되지 않았지만)
김지수-정애리의 대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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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의 양어머니 최정희 교수를 맡고 있는 정애리 씨는 현재 주연급의 포스를 내뿜고 있죠.
"당장 일어서지 않으면 너, 때릴지도 몰라."
"넌 저 벽지가 웃기니? 내 피로 바른 저 벽지가 웃기냐고?!"
"결혼 미뤄. 설마 내가 10년 후에 하랄까봐?"
그야말로 살얼음 같은 냉기를 뿜는 대사들...
진정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정애리-김지수 콤비가 아닐까 합니다.

그나저나 정애리 씨는 유독 입양아를 기르는 어머니 역을 자주 맡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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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꽃선녀님>에서는 윗 사진에 나오는 입양아 문미영(박탐희)을 기르는 재벌집 사모님 원소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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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만큼 땅만큼>에서는 윗 사진에 나오는 정무영(박해진)을 친자식처럼 기르는 어머니 역을 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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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서도 친딸의 각막을 이식 받은 장새벽(윤아)을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엄마 오영숙을 연기합니다. 오호~




흠, 그런데 입양을 권하는 사회로 나아간다면서 여전히 드라마 속 입양아의 현실을 왜 이리도
어두운 걸까요? 현실성을 가미한답시고 여전히 혈통주의를 고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안타깝습니다.
입양된 아이가 사랑받기 위해 의뭉스럽고, 영리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동정을 자아내는 동시에 '역시 입양아는 좀 두려워'라는 인식을 남기게 하는 거... 뭔가 문제 있지 않나요?
반면 사랑받지 못하고 보육원에서 자란 친자식들은 세상에 더없는 밝은 심성을 가진 이로 설정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말이죠. ㅡ_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