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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빅기자들의 영화이야기/남은경 기자

<영웅본색> 회고 FREE TALK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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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talk

<영웅본색>을 회고하다
英雄本色, 그땐 그랬지

홍콩 누아르 붐을 이끌었던 <영웅본색>은 30대 이상에겐 아련한 향수요, 20대 이하에겐 영원한 전설이다. 2008년 8월 14일 <영웅본색>의 국내 재개봉을 맞아 1987년 5월 23일 <영웅본색>이 국내에서 개봉되던 그때 그 시절이 문득 궁금해졌다. 드림시네마 김은주 대표와 당시 <영웅본색> 극장 간판을 그렸던 김영준 씨, 필름을 돌렸던 영사기사 이길웅 씨에게 들어보는 향수 짙은 전설의 이야기.

1987년, 충격적인 전설의 서막

이길웅 처음부터 계속 총을 쏴대는데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지. 그땐 주윤발보다 [추룡]이 더 유명했어. 당시엔 적룡이 아니라 추룡이라고 불렀거든.
김영준 영화에선 주윤발이 조연인데 역할이 너무 멋있어서 뜬 거야. 그대로 의리의 대명사가 됐으니까.
이길웅 주윤발이 워낙 멋있게 생기긴 했잖아.
김영준 그 영화 찍고 우리나라에서 {싸랑해요 밀키스!}하는 광고도 찍었잖아. <영웅본색 2> 찍고 나서는 이 극장에 직접 와서 사인회도 열고. 나한텐 간판 잘 그려줘서 고맙다고 그랬다니까.
김은주 그땐 주윤발이 우리나라에서 또 광고 찍으라고 [밀키스] 참 많이 사먹었는데.
김영준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도 다 유행했어. 담배, 성냥개비, 바바리코트, 선글라스 이런 것들 있잖아.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
김은주 그땐 우리반 학생 60명 중에서 50명 이상이 이 영화를 봤어요. 사실 중학생이었는데도 동시상영관에선 나이 제한을 안 하니까 그냥 들어가서 볼 수 있었던 거야. (웃음) 여자애들은 주윤발 장국영 사진을 코팅해서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영웅본색>이 고등학생 관람가여서 고등학생들 사이에선 더 난리가 났죠. 독서실 구석에서 주윤발처럼 담배 피워보는 남학생들도 많았고, 문방구에선 장난감 달러를 팔기도 했어요. 어떤 애들은 의리를 다지자고 손끝에 칼집을 내서 서로 이름을 쓰기도 했고. 또 남자애들이 아빠가 입고 다니는 비둘기색 바바리코트를 학교에 입고 왔다가, 학교에 쳐들어온 엄마한테 뺏기는 경우도 있었지. 아, 그리고 저는 담배를 못 피우니까 교회 오빠한테 주윤발처럼 담배 피워달라고 졸랐던 기억도 나요.
김영준 주윤발 때문에 흡연자 많이 늘었지. 그거 흉내 안 내본 사람이 없잖아.
김은주 아닌 게 아니라 이번에 상영할 땐 금연한 지 3일 된 사람은 영화 못 본다고 써 붙일까 해요. <영웅본색>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 보면 욕구를 참을 수가 없으니까.
김영준 나는 주윤발이 보트를 타고 떠났다가 다시 유턴해서 돌아오는 장면도 너무 인상적이었어. 그땐 막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니까. 좀 찡하기도 하고.
김은주 저도 그 장면에선 눈시울이 붉어지고 소름이 끼쳐요. 얼마 전에 봤을 땐 주윤발이 죽는다는 걸 아니까 더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여자애들은 장국영을 좋아했는데, 남자들은 자걸(장국영)을 참 미워했었죠?
김영준 맞아. 철부지 고집불통이잖아. 걔 때문에 형이 죽으니까. 사나이 세계를 모르는 거지. <영웅본색 2>에서 의리를 깨닫고 제 역할을 하는데, 비로소 그때서야 수긍을 했지. 난 좍 미끄러지면서 쌍권총 쏘는 장면도 잊을 수가 없어. 지금이야 비슷한 장면이 많지만 그땐 정말 충격이었다고.
김은주 어쨌든 이 영화의 핵심은 의리죠. 남자들이 의리를 위해 죽잖아요. 총격신도 멋있지만, 그들이 [왜] 총을 쏘는지 영화에 나와 있는 거야. 그걸 멋지고 비장하게 보여주고. 그땐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했으면 행복하겠다는 말 참 많이 했어요.
김영준 그땐 사나이라면 <영웅본색>을 보지 않고서 의리를 논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극장에서 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나오면 스윽 가서 보고 온 경우도 많았어.

그리고, [滿員謝禮]의 신화

이길웅 (재개봉이) 진짜 기적이라 생각해. 얼마 전에 여기서 <영웅본색> 시사회를 하는데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그땐 손님들한테 정말 많이 시달렸거든.
김영준 표를 못 구해서 돌아가는 사람도 많았어. 당시 표가 3,000원 정도였는데, 자리가 없을 땐 낚시의자 같이 생긴 보조의자 좌석을 제값 다 주고 사서 보는 사람도 있었다니까. 사실 이게 주윤발 영화로는 한국에서 처음 개봉한 거였어. 간판 올리면서도 그렇게 대박이 날 줄 몰랐는데, 하도 영화가 좋으니까 입소문을 탄 거지.
김은주 밤 9시가 마지막회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니까 새벽 1시까지 틀었다고 하더라고요.
이길웅 계속 매진이 되니까 할 수 없지. 1회도 매진, 그러고 나면 또 사람들이 줄 서 있어서 2회도 매진 이랬으니까. 저기 경찰서(현 서대문 경찰서) 앞까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거야. 그땐 직원이 굉장히 많았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어.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왔는지 바닥이 까맣게 닳을 정도였으니. 나는 정신없이 필름만 돌렸고. 밤에 집에 언제 들어갔는지도 몰라. 사실 영사실에선 필름 돌리는 거 말고 하는 게 있나. 간판이 멋있어야 사람들이 들어와서 영화를 보지. 그래서 이 사람(김영준)이 참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
김영준 그땐 서너 명이 힘을 합쳐 간판 하나를 그렸죠. 내가 추룡이나 주윤발 같은 사람들 얼굴을 맡았어. 그땐 참 잘 나갔을 때야. 이번에 20여 년 전에 그렸던 <영웅본색> 간판을 다시 그렸는데, 정말 감회가 새로웠죠. 극장 간판이 다 없어졌는데 다시 그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리고 그땐 매진이 될 때마다 미술부에 와서 [만원사례]를 한자로 써달라고 해요. 그걸 극장 앞에 붙여놓는 거지.
김은주 그럼 그걸 매진될 때마다 새로 쓰신 거예요?
김영준 그렇지. [만원사례] 써서 벌어들인 밥값도 꽤나 쏠쏠했지. 한자를 잊어버려서 못 쓰겠다, 이젠.
김은주 여기에서 <영웅본색>을 개봉했을 때 스크린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필름 상태도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당시 법적으로 외국에서 필름을 수입해 올 때 수량을 7개로 제한했거든요. 그걸 서울과 지방에 나눠야 하니까 서울에선 필름 한 개로 커버할 수밖에 없는 거야. 영화가 여섯 권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한 극장에서 1, 2권 다 튼 다음에 자전거 타고 또 다른 극장에 배달 가고 그랬대요.
이길웅 그땐 말도 못했어. 보조들이 자전거 타고 막 쫓아오면 기계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거야. 늦게 와서 영화 상영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었고.
김은주 그래도 관객들은 빨리 영화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고 있었지 항의하질 않았어요.
김영준 그러게, 지금 같으면 바로 환불인데 말이야. 그땐 낭만이 있었어.
김은주 필름 상태가 워낙 안 좋아서 [비 내리는] 화면으로 내용만 짐작하면서 봤다는 사람도 꽤 많아요. 그랬는데도 그 많은 사람들이 <영웅본색>을 보러 갔다니 놀라운 일이죠.

2008년, 새로운 전설의 귀환

김은주 80년대 상영할 당시엔 홍콩에서 광동어로 영화를 찍어도, 만다린어라고 중국 베이징에서 쓰는 말로 다 더빙을 했대요. 그런데 이번에 상영되는 필름은 오리지널 동시녹음된 거예요. 싱크가 안 맞는 부분도 없고. 게다가 그땐 80년대 사회적 분위기에 안 맞는다고 잘린 부분도 있었는데, 이번 필름은 노컷이에요.
이길웅 그런데 난 왜 차이점을 잘 모르겠지?
김은주 22년이나 지났으니 아무래도 그렇겠죠. 여기저기 자문을 구해봤더니 지폐 태우는 장면 같은 게 잘렸던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김영준 거기다 그땐 영화가 길면 관객이 잘 안 들었지. 지루한 장면이 있으면 영화사와 합의해서 극장에서 자르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김은주 어쨌든 개봉 날짜가 다가오니까 점점 벅차고 떨려요. 이번에 시사회를 하고 나서 20대 젊은 사람들한테 물어봤어요, 영화 어땠냐고. 벽돌만한 전화기 같은 건 촌스러운데, 총격신 같은 건 정말 멋있다고 하더라고요. 30~40대가 좋다고 하는 건 두말 할 나위 없고.
김영준 이 영화, 우리 애들도 아직 못 봤을걸? 한 번 데려와서 같이 봐야겠어.
김은주 꼭 그렇게 하세요. 요즘 틀에 박힌 생활만 하는 중고등학생들이 <영웅본색> 보면서 의리나 우정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참 많이 하거든요.

글 남은경 기자 | 사진 이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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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후일담 1.
대화를 나누는 중간에도 이길웅 선생님은 쉴 새 없이 영사실을 왔다 갔다 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셨답니다. 급기야는 대화 중간에 죄송하다며 영사실로 들어가 버리셨죠. 영화 필름이 돌아가는 순간에는 일에 집중하는 프로의 자세는 정말 멋있었지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취재 후일담 2.
메인 사진이 무척 멋있게 나왔는데, 사진을 찍어주신 이상엽 씨 덕분입니다. 저도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취재하는 날 시안을 척척 꺼내놓으시더니 <영웅본색> 포스터에 얼굴을 합성하겠다는 안을 내놓으신 겁니다. 눈썰미 있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사진은 한 분 한 분 따로 찍어서 합성한 거랍니다. 그래서 이길웅 선생님과 김영준 선생님이 쓴 선글라스는 같은 제품이라는 거.^_^ 가장 먼저 촬영하신 김영준 선생님은 적룡 역할을 하겠다며 점찍으셨고, 이길웅 선생님은 주윤발 역을 하는 게 마냥 쑥스럽다며 무척 어색해하셨습니다. 어쨌든 사진 촬영에 협조해주신 세 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신 상엽 씨도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