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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빅기자들의 영화이야기/이유진 기자

시네마테크에 관한 짧은 필름

시네마테크에 관한 짧은 필름



http://cinemathequ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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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위치는 오묘하다. 이전에 있었던 아트선재센터도 지금의 허리우드극장도 친근한 공간은 아니지만, 막상 찾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인사동 거리를 거쳐 돌담길을 차례로 지나 외로운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만날 수 있었던, 그리고 북적거리는 종로 거리를 지나 덜컹이는 엘리베이터의 불안함을 감소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시네마테크라에 대한 알싸한 추억담은 때때로 영사기를 통해 상영되는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지곤 한다.


아마도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내가 맨 처음 시네마테크를 찾은 것은 2002년의 여름 즈음, 정독도서관 열람실에서 책 구경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스트레스 충만한 고3 시절일 것이다. 그 무렵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정독도서관을 들어가기 전에 괜히 한 번 기웃거려보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이 심하게 발동하여 극장 안으로 들어선 게 시네마테크와의 첫 만남이었다. 막연하게 들어선 시네마테크의 첫인상은 고요하면서도 친밀한 느낌이랄까, 멍하니 두리번거리던 나에게 누군가 무언가를 물어왔는데 벌떡 일어나 도망쳤던 기억이 난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무슨 말인지 듣진 못했지만 아마도 어떤 영화를 보러 왔냐는 정도의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던 건지…아무튼 그렇게 시네마테크와의 첫 만남은 나름 강렬한 청춘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도망치듯 극장을 빠져나오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3 시절은 지나가고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은 시네마테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소격동의 마지막 고별전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회고전>이 진행 중이었다. 독일의 비정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소외와 억압의 문제, 인간관계의 실체를 자문했던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매일 시네마테크를 찾으면서 나는 고전 영화를 향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게 조금씩 움튼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많았던 아트선재센터에서 허리우드극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부터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꾸준히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휘청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올라오다가 극장 건너편 카바레로 향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갈라질 때의 그 은밀한 정서와 매 번 마주쳐서 익숙한, 왠지 반갑게 인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관객들을 마주할 때의 어색한 감정은 이젠 정겹게 느껴진다. 내노라하는 감독들과 종종 같은 상영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면 주책스럽게 영화보다 그들의 뒤통수에 시선이 가기도 한다. 비 내리는 흐린 스크린과 잡음 가득한 사운드 같은 건 별로 중요치 않다, 그저 쉽게 접할 수 없는 고전들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단순한 영화 감상이 아닌 온 몸으로 영화를 체험하게 하는 시네마테크의 공기는 영화에 대한 갈증을 씻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인간이란 누구나 그리운 대상을 떠올리고 추억하며 지극한 행복을 느끼는 존재다. 고전 속에는 그렇게 그리운 대상들이 오롯이 살아 숨 쉬며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행복을 전달해준다.


올 해로 세 번째로 맞이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시네마테크의 주옥같은 프로그램 중에서도 특히나 반가운 행사다. 시네마테크의 소중함을 알고 그 안에서 상영되는 고전 영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또 그 모든 기억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올 댓 재즈>를 보고나서 밥 포시의 경이로운 열정을 찬양하고 <더러운 얼굴의 천사>를 보고 제임스 캐그니의 소름끼치는 연기에 감탄했던 기억, <그림자 군단>을 보고 너나할 것 없이 감격적인 표정을 짓던 감독들의 얼굴, <셜록 주니어>를 보며 박수치며 깔깔거린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웃음까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과 환상에 젖어드는 공간이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젠 이 친구들이 더 이상 어색함에 서성이지 않게 그리고 그리울 때면 언제든 거장들의 명작들을 꺼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차례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고 그런 친구가 모여드는 시네마테크라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공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2008. 01.
무비위크 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