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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빅기자들의 영화이야기/홍수경 기자

<놈놈놈> 김지운 감독 인터뷰 원본

<놈놈놈> 시사회가 끝나고 김지운 감독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오랜 시간 인터뷰를 했지만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 영화 중심으로 글을 실었어요. 하지만 반 이상이 잘려나가서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놈놈놈> 개봉 후 김지운 감독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합니다. 그는 박찬욱 감독같은 자의식 강한 작가도 아니고 류승완 감독같은 열혈 액션 청년도 아닙니다. 그 중간에 서 있다고 할까요? 그의 지금까지 10년을 되돌아보는데 유용한 인터뷰가 되었으면 합니다. 언제까지나 영화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길 바라요. (개인에 따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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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캐릭터, 캐릭터 

- 첫 시사회는 어땠어요?

원래 시사회는 잘 안 봐요. <달콤한 인생> 때는 안 보려고 눈감고 있다가 잠든 적도 있어요.(웃음)

- 칸에서는 어쩔 수 없이 본 건가요?

그게 이례적이었죠. 보면 괴로워요. 더 손대야 하는데, 음악 넣어야 하는데, 컷 줄여야 하는데 하면서 영화를 즐기지 못해요. 개봉 때까지 계속 조금씩 손 볼 예정이에요.

- <석양에 무법자> 오프닝처럼 캐릭터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란 표시를 꽝꽝 박을 생각을 없었나요?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거에 대한 패러디, 오마주, 리메이크를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내가 레오네의 ‘무법자’ 3부작 때문에 가졌던 어린 시절 로망을 한국영화로 실현하고 싶었어요. 때문에 캐릭터는 가져왔지만 <석양의 무법자>를 의식하며 만들진 않았죠. 오히려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가 영화 형태상 <놈놈놈>과 더 가까울 수 있어요. 칸영화제 상영버전은 정말 악당들 애기니까 레오네의 냄새가 강했지만, 개봉 버전은 <쇠사슬을 끊어라> 자장 안에 있습니다.

- 한국형 웨스턴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고민했을 텐데 답이 쉽게 나오던가요?

<쇠사슬을 끊어라>를 보고 쉽게 판단을 내렸죠. 1930년대 배경의 만주로 하면 되겠구나! 그러면서 내가 갖고 있는 구도 안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인물을 만들어낸 거죠.

- 그럼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가져온 모티브는…?

분위기? 이글거리는 눈빛, 찌푸린 얼굴들, 상대방을 응시하는 시선들, 극단적 클로즈업. 바싹 마른 황야에 대한 분위기. 인물과 풍경을 교차하면서 하나의 아우라로 만들어내는 그 느낌들.

- 만주 여행도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거 스페인 여행인데 잘못 나온 겁니다.

- 앗, 그럼 마카로니 웨스턴의 본 고장으로?

그렇죠.(웃음) 마카로니 웨스턴의 본고장인 스페인을 여행하다가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웨스턴을 한국에서 구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러다 우연히 <쇠사슬을 끊어라>를 보게 됐고.
- 그런데 웨스턴이라면 사나이들이 한껏 폼 잡는 로망을 꿈꿨을 텐데, 송강호가 이상한 놈으로 등장하면서 구조가 비틀어진 건가요?

일단 한국에서 성취하지 못했던 스펙터클과 비주얼을 보여주고 싶었죠. 동시에 각기 다른 매력과 개성을 가진 세 명이 캐릭터 연기의 재미를 주고. 그러면서 유머가 발생하는 게 영화적으로 효과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스펙터클 사이사이로 유머를 끌고 나가는 인물이 필요했고. 그리고 어쨌든 송강호와 작업을 같이 하자며 떠올렸던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이상한 놈이 중추적 역할을 맡게 됐죠.

- 송강호와의 작업을 애타게 기다렸던 건가요?

<반칙왕> 이후로 지나가는 인사말처럼 ‘한 번 더 해야 되는데’ 그러다가, 나는 <달콤한 인생>을, 송강호는 <괴물>을 끝내고 다음 작품을 찾고 있었어요. 이때 아니면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에는 송강호 오달수 문소리 윤제문이 나오는 ‘고인돌’ 영화를 만들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고.(웃음) 결국 쌍권총을 휘두르는 서부영화를 만들면 진짜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 총을 되게 멋 없게 쏘더군요.

살기 위해 쏘는 거라서.(웃음) 그게 태구 캐릭터에 맞죠.

-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데요, 송강호는 감독들에게 마구 영감을 주는 배우인가요? 감독들이 그를 보면 자꾸 뭘 시켜보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

같은 걸 주문해도 아주 다른 느낌의 연기가 나와요. 나올 것을 기대하기도 하는데,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줘요. 같은 대사, 같은 연기를 송강호가 하면 풍요롭고 즐거워지죠. 송강호에게 자꾸 무언가를 던져주는 게 너무나 즐거운 작업입니다.

- 그렇다면 특별히 <석양의 무법자> 투코를 애기할 필요는 없었겠군요.

전혀. 태구는 송강호를 위해 만든 캐릭터죠.

- 배우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여요.

음, 나는 배우 때문에 영화하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발견하는 사람들의 불가사의한 표정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드는 것 같아요.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미장센, 색감, 미술, 구도 등에만 신경을 많이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정말 생각하는 건 ‘캐릭터’라고요. 배우를 어떤 캐릭터로 보여줄 건지만 고민해요.

- ‘실장님’ 이병헌과 ‘달콤청년’ 정우성의 기존 이미지를 뒤집으려는 의도도 있었나요?

나쁜 놈 캐스팅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단순히 극악무도한 인물 말고, 회환과 상처를 가진 도련님같은 느낌의 악인을 원했죠. 이병헌이 최고 적역이었어요. 이병헌에게 창이 캐릭터는 그 시대의 양아치라고, 잘 살았다가 집안이 망해서 몹쓸 놈이 된 거라고 말했어요. 퇴락한 어둠의 왕자 같은. 이병헌만큼 이런 센시티브한 캐릭터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고. 정우성을 통해선 남자들의 로망을 한 번 실현시켜 보고 싶었어요. 더불어 여자들이 ‘뻑’ 갈 수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근데 정우성 자체가 멋있으니까 내가 뭐 한 게 없어요. ‘말 타고 가라’ 그러고 찍으면 멋있게 나오니까.(웃음) 요구한 게 있다면 무심한 느낌을 달라고 했어요. 쿨한 정우성을 보고 싶었거든요. 보통 달콤한 역할을 맡거나 감정이 폭발하는 연기를 하는 스타일인데, 그걸 계속 누르면서 가급적 차갑게 가달라고 했죠. 송강호는 뭐, 항상 새로우니까. 서부로 간 <반칙왕> 같지 않던가요?(웃음)

- 영화보고 다들 ‘정우성 멋있다’고 난리였어요. 저도 처음에 볼 때는 정우성이 진정 멋있다고 생각했죠.

그건 사람 자체가 멋지기도 하지만, 서부영화에서 처음 보는 장면들을 연기해냈기 때문일 거예요. 말 타면서 총 돌리는 거랑, 말 타고 역주행하는 것. 경주마를 타고 미친 듯이 달리면서 총을 휘두르는데 그런 걸 한 영화는 없었다고 알고 있어요.

- 정우성의 고난도 액션은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그 당시 다들 의욕적이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새로운 걸 시도했던 거 같습니다. 역주행 같은 경우, 이모개 촬영감독이 모든 카액션에서 역주행 신이 가장 액티브하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어요. 가능할까 고민하는데 정두홍 무술감독이 아이디어를 냈고, 또 정우성이 의욕적으로 해보겠다고 그러고. 그래서 <놈놈놈>은 내가 만든 영화라기보다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든 영화죠.

- 기사 때문에 일전에 스태프들과 직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놈놈놈> 컨셉트를 각자 마음에 알아서 품고 있더라고요.

다들 애정이 많아요. 스태프들이 사심 없이 혼신으로 만든 영화죠.(웃음)

- 각자 다른 해석인데 ‘정통 웨스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일치했어요. 조화성 미술감독은 미술을 두고 ‘국적불명’이란 말도 했고.

내가 주메인요리를 만들려고 하는데 서로들 재료를 가지고 왔어요. 어느 정도 섞어서 반죽할까 하는 조리에만 신경을 썼고 통제하진 않았고.

- 그러면 거대한 컨셉트가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가보자 그런 거?

내 영화가 다 그래요. 나는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를 만들어요.(웃음)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원래 목적만 살아 있으면 어떻게 변하든 상관없어요. 그런 걸 즐기는 편이고, 그걸 가지고 잘 조리하고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거죠.


웨스턴과 이스턴을 넘은 새로운 것

- 추격전 촬영 전 두려움은 없었나요?

각각 다른 동기로 인해 거침없이 황야를 질주하는 대추격전을 담고 싶었는데 문제는 박진감과 스피드였는데. 가보니 모래땅이고, 말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말 위에서 촬영할 수도 없고. 정말 무식한 애기지만, 말과 같은 속도로 달릴 차가 있어야 해서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다졌어요. 도로 만들고 다시 원상복귀하는 과정에서 제작비도 많이 올라갔죠. 블록버스터 눈높이에 맞춰진 관객들 대상으로 그에 못지않은 걸 연출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 처음부터 13분 동안 끌고 가려고 했던 것?

거기가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고. 그 장면은 내가 <놈놈놈>을 처음 생각했을 때의 이데아거든요.

-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음악을 염두에 두고 촬영했나요?

영화를 만들면서 빠른 음악들을 들었죠. 타악기 위주의 라틴 음악을 많이 대입했고, 그러다가 내가 어린 시절 너무 좋아했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얹었더니 너무 신나는 거예요. 주얼리가 부르는 ‘베이비 원 모어 타임’의 ‘당다라따따당당’ 같은 그런 리듬을 영화 전반에 계속 가져가려고 했고, 그런 리듬감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어요. 최고 피치를 올리는 하이라이트가 대평원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를 가기 위한 리듬을 안배했죠.

- 웨스턴을 생각했는데 코미디가 더 세다는 반응도 있어요.

(놀라며) 오, 정말? 송강호가 너무 파괴력이 있나?

- 칸 버전보다 상황을 설명하는 대사가 많아졌더라고요.

이야기나 서사가 흥미로운 영화는 아니었고, 인물들의 느낌이 발현되는 순간이 중요합니다. 오프닝 기차습격신, 세 사람이 벌이는 귀시장 전투, 공을 많이 들였던 대평원 추격신 외에 내가 사랑하는 영화의 장면은 창이가 부하를 쏴 죽이는 것부터 도원과 태구가 자리에 누워 달밤에 도란도란 애기하는 장면이에요. 세 사람의 감정이 제일 잘 드러나는 장면인데. 거기만 이 사람들의 제대로 된 장면을 넣어봤는데 시사회를 본 관객들이 되게 좋아했어요. 송강호만 할 수 있는 대사 개그에 정우성이 시니컬한 톤으로 응수하죠. 안 맞을 법한 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서먹한 유머’라 할 수 있죠.(웃음)

- 총격 액션은 어떻게 표현되길 원했나요?

새롭게 창조한다기보다는 한국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액션 신을 연출하려고 했어요. 완전 서구 웨스턴식 액션보다는 조금은 혼합적인 느낌으로, 무협과 웨스턴이 합쳐진 상태로 나왔죠. 정두홍 무술감독이 웨스턴에 무협을 섞으면 색다른 액션이 될 거 같다는 아이디어를 내놨고요.

- <석양의 무법자>처럼 대결 장면에서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들어가는데 배우들에게 특별한 지시를 했나요?

레오네는 표정으로 풍경을 만들어낸다는 애기를 들었던 감독이고. 나도 마지막 총을 뽑기 직전의 표정을 통해서 인물들이 여태까지 달려왔던 전체 느낌을 긴장감 있게 연출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갖고 왔던 캐릭터는 잊어버리고 그 상황에서 가장 고조된 상태의 느낌들을 원했죠. 정말 숨 막히는 긴장의 표현 말입니다.

- 이 영화에서 가장 높게 칭찬받아야할 점은 '용기'인 거 같아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걸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죠.

최고의 추격 신으로 남고 싶다

- 시대배경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많은데 필요에 의한 거였나요?

<쇠사슬을 끊어라>에서 만주는 다인종의 공간이에요. 열강 사이에서 다인종 다국적이 혼합된 느낌이 강하죠. 그게 오락 활극 영화의 좋은 소재였을 것 같았어요. 어떤 평론가가 <놈놈놈> 보고 레오네보다는 <블레이드 런너> 같다고 했는데 그 말도 맞아요.

- 저는 <매드 맥스>가 떠올랐어요.

한국의 시대적, 공간적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까 좀 혼합적인 장르가 됐던 거 같아요. 반대로 그 정도로 복잡한 혼란 상황을 연출하는 게 나쁘지 않았고. 단순한 웨스턴 묘사라기보다는 한국적인 느낌이 더해지는 과정에 장르가 변한 거 같아요.
- 감독님의 심정이 반영된 건지 모르겠는데 인물들에게서 아나키스트 영향이 엿보여요.
그 당시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어요. 아나키즘은 가장 극단적인 상태에서 나오는 철학이라고 보거든요. 그 당시 만주까지 갔던 우리나라 조상이라면, 만주에 꿈을 찾아왔겠지만, 그 배경에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으면 여기까지 왓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무정부적인 느낌이 났을 거 같아요. 어떤 신념들이 있는 게 아니라 무신념 속에서 무정부적인 태도로 벌이는 악다구니 같은 사투가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 기자시사회 무대 인사에서 ‘명작이나 걸작은 아니지만 오락영화의 진심을 갖고 만들었다’고 했어요. 스스로 <놈놈놈>에 대한 가치 평가를 끝낸 건가요?

나는 <놈놈놈>이 ‘최고의 추격장면이 있는 영화’ ‘최고의 오프닝 액션 영화’ 식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애초부터 명작들이 갖고 있는 보편성을 유지하는 영화가 아니었고요. 기념비적인 영화적 요소가 있는 영화로 기억에 남고, 마니아든 관객이든 미친듯이 흥분하며 그 점에 대해 애기했으면 좋겠어요. 영화적 문화 안에서 애기됐으면 좋겠죠.

- 만들면서 그런 생각을 한 건가요?

제일 좋아하는 영화시상식이 ‘MTV 무비 어워즈’거든요. 최고의 키스신, 최고의 액션신 등을 뽑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영화적 아우라로선 그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 계속 장르 탐구를 해왔는데 장르 최고의 달인이 되고 싶다는 욕심은 없어요?

그런 거 없어요. <놈놈놈>은 어떤 의미냐면, 내가 갖고 있는 영화적 로망을 실현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한 것 같아요. 여태까지 먼저 장르를 선택한 다음 어울리는 이야기를 끌어왔다면 아마 다음 영화부터는 아마 이야기를 먼저 생각할 것 같아요. <놈놈놈>은 내 영화의 성인기로 가기 위한 청년기의 마지막 치기어린 영화죠.

- 치기치곤 좀 비싸잖아요?(웃음)

비싼 치기지만 그럴 만 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놈놈놈>을 두고 누가 한 멘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오락영화인데 광기가 서려있네’죠.(웃음)

- 그래서 로망은 이루어졌나요?

이 시대의 세 배우를 한 영화의 한 프레임 안에 집어넣었다는 것. 한국에서 웨스턴을 했다는 것, 그리고 미친듯이 달려보는 것. 개인적인 이 로망은 다 이뤄졌죠. 남은 건 관객들의 폭넓은 호응밖에 없어요.(웃음)

- 15세 관람가가 나와서 그리 폭넓지 못할 거 같은데요.(웃음) 잔인해서 관람가가 그렇게 나온 걸까요?

분명한 건 장애가 된다면 잔인한 걸 쳐낼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 예전 영화와 달리 1,000만 관객과 소통해야 하는데 좀 달라질까요? 이전에는 좀 마니아적인 소통이었잖아요.

그래서 과연 될까 걱정인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고 새롭게 선보이는 것도 많고 하니, 영화가 무사안착해서 손해 보지 않으면 다 이뤘다고 생각해요.

- <달콤한 인생> 때 서울이 너무 답답해서 그에 질려 평원에 나가고 싶은 건 아니죠?

어린 시절 로망이고 난 평야가 좋아요. 우리나라는 어딜 가도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 대륙의 대평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원 없이 달려보면, 우리는 원래 그런 민족이 아니었을까 하는 판타지가 있었죠.

- 비좁게 사는 한국인들에겐 분명 판타지가 될 듯합니다!

펑 한 번 뚫어주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죠.(웃음)

- 좀 이른 질문이지만 DVD는 얼마나 알차게 만들 생각인가요? 마니아들의 기대가 높아요.

본편보다 더 재미있는 서플을 기대하세요.(웃음)

- 여러 가지 엔딩이 존재한다고 들었어요.

지금 엔딩은 시나리오의 엔딩이에요. 시나리오에서 한 장면 빠졌는데 DVD에서 볼 수 있을 듯해요. 엔딩은 세 가지 버전이 더 있었는데, 태구와 도원이 눈 오는 날 귀시장에서 대치하며 끝나는 엔딩도 있고, 도원이 석양을 등지고 떠나는 엔딩도 있고, 누워 있던 병춘이 태구가 던져주는 보물에 일어났다가 거기에 맞아 쓰러지는 엔딩도 있고.

- 지금 엔딩의 결정 기준은 뭔가요?

오리지널 엔딩이 느낌이 덜할까봐 보완의 요소로 나머지 것들을 찍어놓은 거에요. 결국 다른 게 조금씩 부족하다는 느낌에 지금의 엔딩을 선택했죠.


청년기 끝, 성인기 시작

- 예전부터 시나리오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는데, <놈놈놈>에서 그런 비판이 강박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나요?

내가 이 영화를 통해 하려는 건 다른 데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이야기만 만들었어요. 그게 강박까지 가진 않았어요. 다른 팀원들에게 ‘말이 된다’는 확인만 받으면 달리는 신을 찍으러 간 거죠.(웃음) 사실 여태까지 <달콤한 인생>이나 <장화, 홍련>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어떤 분들은 영화에서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 많은 영화적 요소가 있고 그게 다 즐길 거리잖아요. 이야기는 그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런 작업을 했고. 그런데 일부 평론가들은 자꾸 이야기를 가지고 따집니다. 감독이 뭘 하려 했나를 봐주고, 그걸 잘 했나 못 했나를 판단해줘야 ‘어, 맞다’ 하는 거지. 내가 하려는 건 굴러가는 말똥처럼 쳐다보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 애기하는데 너무나 도움이 안 되는 평론이에요. 관객에게도 평론가 자신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 그런 평가에 대해 억울한 게 있나요?

억울해하면 내 속만 답답하니까 그냥 무시하죠. 만약 내가 그런 부분 때문에 자꾸 주저하고 자기 검열을 했다면 이렇게 하고 싶은 대로 쭉쭉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를 해왔어요. 그걸 좋아하는 관객이 생겨났고, 그 때문에 영화를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떨어져 나가는 관객도 있고, 또 새로운 분들이 ‘어, 애봐라’ 하면서 환호를 하기도 하고. 이번 영화도 그런 게 심할 것 같군요.

- 김지운 감독을 크게 작가로 구분하지는 않아요. 주로 ‘스타일리시하다’라 말하고 끝나는데, <놈놈놈>은 그런 평가에 대한 복수극같기도 해요.(웃음)

아니,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웃음) 나는 그냥 나의 길을 간다는 거죠. 이거 아니면 다음 단계가 안 되니까. 정리하고 가겠다는 거죠.

- <김지운의 숏컷>을 보면 10여년 백수생활이 인생에서 가장 길었고 기억에 남는 기간이라고 나와요. 이제 감독 10년인데. 가장 긴 기간을 두 번 맞이했네요.

백수 10년, 감독 10년, 이제 또 다른 10년을 맞이해야죠.(웃음) 10년은 나를 영화감독으로서 알아가는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내가 도대체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이제 비로소 장르영화에 대해 조금 알게 되고, 숙련된 장르 기술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구사할 수 있는 단계가 되지 않았을까. 장르영화에 빠졌던 청년기를 떠나 성인식을 치르고 가야하는 10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에요. 언제나 당장의 나의 모습을 속이고 싶지 않았어요. 성급하게 빨리 작가 칭호를 듣고 싶지 않았고, 내 영화를 통해 내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면서 갔죠.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의 평가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 다음은 할리우드 진출인가요?

기회가 빨리 오면 가면 되는 건데. 영화의 본고장에 간다니 호기심이 있죠. 어떤 면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자양분이나 감성이 거기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부터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감독들을 좋아했던 거 같아요. 알게 모르게 내가 그걸 안 버리고 가는 걸 수도 있죠.

- 자기가 좋아하는 걸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래서 고군분투하는 거죠.(웃음) 제가 되게 편하고 럭셔리하게 영화 만들 거 같지만 만들 때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목숨 걸고 만들어요. 오락영화에 혼신을 다하는 만듦새의 윤리나 만듦새의 미학도 있는 게 아닌가 해요. 난 어떤 한 장면도 설렁설렁 만드는 게 없어요. 그게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 그럼 럭셔리 이미지는 오해인가요?

사람 만날 때는 지저분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영화 만들 때는 노가다 하듯 만듭니다. 일을 정말 무식하게 한다고요.

- 이번에 제작도 맡았잖아요. 마케팅에도 많이 신경쓰는 거 같더군요.

감독들은 옛날에 포스터 하나, 팜플릿 하나, 예고편 하나에 퍽 가서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 그런 요소를 잘 알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도움을 주고자 했죠. 마케팅 아이디어를 내는 작업도 재미있더군요.

- <놈놈놈>이 한국영화의 새로운 좌표가 될까요?

좌표가 될지는 모르지만 욕심은 있어요. 예를 들면 <놈놈놈>이 반 세기만에 만주 활극을 부활시킨다면, 내가 바라는 것 중 하나가 되겠죠. <놈놈놈>이랑 <다찌마와 리>가 잘되서 만주 액션이 하나의 건강한 장르가 될 수 있다면 작업의 의미가 크겠고.

- 영화를 본 관객들이 딱 어떤 반응을 보였으면 좋겠나요?

오락영화 이정도면 괜찮네. 좋네. 재미있네. 그래서 또 보고 싶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