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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빅기자들의 영화이야기/이유진 기자

연극 <라이프 인 더 씨어터> 연극으로 인생을 돌아보다

마당, 세상을 만나다
연극 <라이프 인 더 씨어터>
연극으로 인생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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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극 한 편은 작품 자체의 가치를 넘어서 인생과 예술의 본질을 이야기하곤 한다. 무대 위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또 다른 인생을 바라봄으로서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곤 한다. 지금의 생활이 고될 때나 어떤 환희의 순간을 경험할 때, 혹은 정말 말 그대로 문득 지나간 나의 인생을 돌아보는 순간들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중요한 건 우리가 흘려보낸 인생을 돌아본다는 것 자체가 지금을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돌아봄으로써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위치에서 멀리 떠날 수도,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들은 한 걸음씩 나아가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우리의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든다.

여기 무대 위에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는 한 늙은 배우가 있다. 그리고 그 늙은 배우 옆엔 그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게 하는 젊은 배우가 있다. 같은 극장 무대에서 같은 분장실을 쓰기 시작하며 인생을 교감하는 두 배우의 이야기 <라이프 인 더 씨어터>는 제목 그대로 극장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인생을 무대 위에 올린 작품이다. 오랜 연기 내공으로 연기의 연륜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선배와 이제 막 연기의 맛을 알아가는 후배, 선배는 후배에게 연기를 향한 자세를 가르치고 후배는 선배에게 연기를 향한 질문을 던지며 삶의 진실을 교감한다. 서로의 분장을 지워주고 의상을 챙겨주며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던 두 사람, 그러던 어느 날 후배가 영화를 찍게 되고 스타로 거듭나면서 두 사람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황혼기를 맞아 외롭고 불안해진 선배의 시샘과 질투, 선배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후배의 고민이 엉켜들면서 두 사람의 골은 깊어져갈 뿐이다. 삶의 진실을 함께 고민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작은 손동작 하나까지 맞춰가던 두 사람이 무대 뒤에서, 심지어 무대 위에서까지 엇갈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과연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중하게 질문하게 된다.

한 평생 <햄릿>을 연기하는 게 소원이었지만 결국 후배의 햄릿을 먼발치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선배의 쓸쓸한 뒷모습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 한 번의 시선으로 압축시킨다. 언젠가는 꼭 햄릿을 하고 말겠다며 웃음을 잃지 않던 그가 햄릿의 대사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때,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쓸쓸한 독백을 무대 위에 던지는 순간 우리는 이 작품에서 연극이 아니라 인생을 대면하게 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다. 나이 듦에 따라 우리는 흘러간 시간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만나야만 한다. 평생의 소원 햄릿을 연기하진 못했지만, 오랜 시간 극장을 지키며 연기해 온 선배의 시간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생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늙어 가는 것을 두려워 않고 그 나이에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알고, 쉬지 않고 묵묵히 걷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백발의 노배우가 분장실을 나서며 “그 동안 수고했어요.”라고 슬쩍 미소 지을 때 이 무대는 온전히 지금 우리의 인생을 응원하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세상은 무대, 우리는 배우, 인생은 연극이라 말하는 <라이프 인 더 씨어터>는 제목 그대로 무대 위에서 우리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연기란 무엇이냐, 좋은 배우란 무엇이냐, 너는 왜 배우가 되었느냐, 공연이 끝나고 선배가 후배에게 건네는 질문들은 마치 우리에게 지금 우리의 인생을 잘 꾸려가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것만 같다. 그는 굳이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아니더라도 한 번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줄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한 편의 긴 연극과 같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연습, 리허설, 본 공연의 구별 없이 그 모든 게 생생한 라이브라는 것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삶을 충실하게 이끌어갈 필요가 있다. 연극의 유효기간은 순간일 뿐이다. 하지만 배우는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든다. 인생이란, 순간과 영원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기록을 만들어가기 위해 스스로의 무대 위에서 당당히 주인공으로 나서야 한다. 시간의 흐름을 두려워 않는 당당한 주인공이 되는 것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는 단 하나의 방법임을 잊지 말자.

<무비위크>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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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배우가 연기하는 여섯 편의 극중 극은 이 연극의 관전 포인트다. 어떤 작품이 숨어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