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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빅기자들의 영화이야기/이유진 기자

뮤지컬_씨왓아이워너씨_스스로 원하는 만큼의 진실


 

마당, 세상을 만나다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

스스로 원하는 만큼의 진실





《이 세상에 과연 진실이란 존재하는 걸까? 우리는 때때로 보고 싶은 것만 진실로 판단하려고 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실은 진심으로 믿는 순간 비로소 진짜가 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좇는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진실을 손에 쥐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목적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진실을 대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진실은 굳이 진실이 될 필요가 없어지기도 한다. 진짜 [진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으므로, 진실을 정의내릴 수는 있어도 증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는 이렇듯 증명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한 보고서이자 진실을 좇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언뜻 보면 어둡고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사실 근래에 이렇게 명쾌한 작품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이건 정말 요즘 한창 유행인 [생각대로 송]처럼 내 생각대로 보고, 해석하고, 느끼면 되는 무대다. 작품 제목 그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만 보면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진실을 좇는 각기 다른 욕망이 한 무대 위에서 충돌하며 시작한다. 뉴욕 센트럴 파크를 배경으로 벌어진 살인사건(1부)과 신의 기적에 대한 계시(2부)라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숨 가쁜 진실게임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1부는 지난 밤 센트럴 파크에서 벌어진 강간과 살인사건에 대한 목격자와 용의자를 취조하는 경찰 취조실. 목격자인 영화관 경비원, 자신이 살인범이라 주장하는 강도, 남편과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는 아내, 도둑의 꾐에 넘어갔고 부인 역시 자신을 배신했다는 죽은 남편의 주장을 전하는 영매에 의해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진실은 혼란 속에 묻히고 극은 점차 혼란 속으로 빠져들면서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미궁의 상태로 막을 내린다. 2부 또한 마찬가지다. 9‧11 이후, 믿음으로 충만했던 한 신부는 회의와 의심이 생기자 센트럴 파크에서 거짓된 예수의 재림을 설파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신부는 영혼을 잃어버린 군중들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거짓말로 많은 이들이 동요하자 신부는 극도의 불안에 휩싸이고, 진실을 향한 의심으로 가득 찬 그에게 정작 진짜 진실이 나가온다. 우리는 혼란스럽게 각기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집중하면서 [도대체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각기 다른 진실을 말하는 인물들 중 진짜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아니 그 인물들의 진술 중에 과연 진실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질문이 계속될수록 그 질문은 점차 [과연 진실이란 존재하는 가]란 의심으로 변화해 간다.


이 작품은 무대의 사면을 모두 사용하는 무대가 독특한데 사면의 천장엔 쉴 세 없이 영상이 틀어진다. 이 영상은 무대의 장막 역할을 하기도 하고 그 자체로 세트가 되기도 하며 또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무대 사면을 모두 개방하여 관객이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공연을 관람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시공간 안에 있지만 같은 진실을 볼 수 없는 아이러니함은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 몸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기존에 볼 수 볼 수 없었던,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에 낯설어하거나 어려워 할 필요는 없다. <씨왓아이워너씨>의 작곡가 마이클 존 라키우사는
{이 무대 위에 진실이란 존재하는 가?}란 질문에 {결국 믿음이다. 믿음을 잃었을 때와 얻었을 때, 그것이 어떻게 진실로 다가오게 될 지 선택하는 건 오로지 관객들의 몫이다.}라고 답했다. 모든 진실이 거짓처럼 의심스러운 이 작품에서 가장 또렷하면서도 명쾌한 진실은 단 하나다. 스스로 원하는 만큼의 진실이 진짜 진실이라는 것 말이다. 물론 이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진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