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나인>
꿈과 현실을 오가는 인간의 삶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세계 안에 고립될수록 삶의 의미가 희미해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예술가의 삶은 어디까지 작품의 재료로 허용될 수 있을 것인가. 뮤지컬 <나인>은 꿈과 현실 속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예술가의 고뇌를 바탕에 둔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자전적 영화 <8과 1/2>을 무대로 옮긴 이 작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삶의 근본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주인공 귀도는 세계적인 천재 감독이자 모든 여자들이 사랑하는 만인의 연인, 부족한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사실 그는 어릴 적의 치명적 상처로 인한 외상을 가진 인물이다. 스스로 구축해 놓은 견고한 세계 속에 고립된 나머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꿈과 현실의 괴리감 때문에 힘겨워 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뮤지컬 <나인>은 ‘귀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가 만들어낸 환상과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을 교묘하게 짜깁기 하여 그 경계에서 인간이 느끼는 혼란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천재 영화감독인 귀도, 차기작 준비가 잘 풀리지 않자 아내 루이자와의 권태를 해결하기 위한 핑계로 베니스의 스파를 찾는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여자들과 온갖 골칫거리들이 고스란히 따라오면서 루이자와의 갈등은 심해지기만 한다. 게다가 제작자의 압박에 억지스럽게 만들어낸 영화 <카사노바>가 자신의 삶을 반영하고 있음을 깨달으며 그의 혼란은 극도로 치닫게 된다. 더 이상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고립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홀로 남은 그는 결국 자신의 정수리에 권총을 가져가기에 이른다.
공연 내내 무대를 서성이는 어린 귀도는 그의 어릴 적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극적 장치로 등장하고, 귀도의 이름을 남발하며 그에게 손을 뻗는 여자들은 등장인물을 넘어서 세트의 일부로 존재한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여자들이 장식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이 이야기가 온전히 ‘귀도’라는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거울을 마주한 어린 귀도와의 만남은 이 이야기가 귀도란 인물의 꿈과 현실의 교착점에 서 있음을 대변한다. 한 인물이 꿈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된 그의 방황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삶의 심판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세계 안에 고립될수록 삶의 의미가 희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삶이 어그러져 있고 자신에게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인간의 삶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이 작품은 몽환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삶을 향한 고민을 무대에 풀어 놓는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열다섯 명의 여자에 둘러싸여 화려한 퍼포먼스를 뽐내던 그가 처음으로 무대 위에 홀로 남겨지는 순간, 그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무대 밖의 관객들에게도 심도 있게 다가온다. “난 뭘 믿고 내 얘기를 시작했던 걸까? 나는 이제 길을 잃었어.”라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은 초심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 많이 닮아있다. 무대를 통해 재현되는 나의 과오는 스스로의 깨달음과는 또 다른 의미심장함을 남긴다. 어른과 아이의 얼굴이 혼재된 채 절규하는 그의 오열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아마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우리가 단단하고 견고하게 쌓아올리던 세계가 사실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도피처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순간 우리의 삶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현실을 너무 멀리 지나친 나머지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 고립된 적은 없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우리는 항상 의미 있는 어떤 것을 잃고 난 후에야 뒤늦은 깨달음과 후회로 절망하지 않았던가. <나인>은 가치 있는 인생을 위해서 자신만의 세상에서 나와 우리가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에 최선을 다 하라고 관객들을 독려한다. 우리는 현실에 지쳐 내가 가야할 길을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길을 잃었음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도망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겁내지 않고 스스로를 대면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임을 잊지 말자.
<무비위크> 이유진 기자